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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Sep 17. 2023

이 여자는 내 아내가 아니었어!

Fiction (소설이란 뜻)

"자기야. 찌개 맛있다. 정말!"

"뭐?"

처음에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 아내가 말했다.

"남편 요리 솜씨 정말 좋네. 맛있어."

아내와 나는 둘 다 음식을 했다. 그런데 아내가 내가 끓인 순두부찌개를 칭찬해 준 것이었다. 낯선 마음 탓에 조금 얼떨떨했지만 나는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아내가 변했다!

그랬다. 무서운 일이지만 분명했다. 아니, 아니다. 이 여자는 아내가 아닌 게 확실하다. 지금 이 여자는 아내와 생김새도, 키도, 몸무게도 다 똑같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도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그녀의 큰 눈 속의 우아하고 지적인(지적으로 보일 뿐인) 크고 검은 눈동자에 매료됐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분명 아내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난 20년간 한 번도 내 음식에 대해 칭찬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음식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내 어떤 행동도 칭찬한 적이 없었다. 잘했다. 수고했다. 한 마디 들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퇴근해서 돌아오면 고생했어요. 했고, 분리수거를 하고 오면 수고했어요. 하고 말했다.

이제 이 여자는 외식 메뉴도 내가 먹고 싶은 걸 같이 먹는다. 예전에는 뭐가 먹고 싶으냐고 내게 한 번 묻고는, 그녀가 먹고 싶은 메뉴를 내가 맞출 때까지 스무고개를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내가 "돼지갈비"라고 하면 그녀는 단번에 "좋아!" 하며 같이 갈비를 먹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갑자기 안 마시던 맥주를 마셨고, 맥주를 마시고는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며 유혹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밤은 전에 없이 뜨거웠다!


그러니 단언컨대 이 여자는 내 아내가 아니다!


하지만 도무지 언제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 보다 어떻게 이렇게 깜쪽같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지 그게 더 오리무중이었다. 자다가 방귀를 뀌는 것까지 똑같은데 로봇일 리는 없고, 수십 년 만에 나타난 쌍둥이일 가능성도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다른 영혼이 내 아내의 몸에 들어간 것일까? 만일 이런 초현실적인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라면 내 아내는 어디 있단 말인가?! 소름 끼치는 가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패닉에 빠찌고 말았다. 분명 외모는 아내이지만, 아내라면 하지 않을 행동과 태도를 보이는 이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야.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빙의(憑依)라니. 지나치게 비 상식적인 가정이었다.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일 리 없다. 그냥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이고, 어쩌면 아내가 정말 조금 변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작은 변화에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최근에 아내가 만난 사람은 올해 이혼한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때 친구와 남편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그간 상대적으로 나를 너무 푸대접을 했다는 걸 알게 된 탓일지도 모른다. "아니, 남편이 밥도 해?" "설거지에 빨래도 한다고? 게다가 청소까지?" "얘 지 남편 귀한 줄 모르네. 와- 나 같으면 업고 다닌다!"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온 것은 아닐까?    

나의 아내


퇴근해서 돌아오니 아내가 "오늘도 수고했어요." 하고 웃으며 반겨준다. 소름이 온몸에 돋았다. 수고했다니! 이 여자는 내 아내가 아니다! 절대! 여자가 말했다.

"배고프지? 밥 차려 놓을 게 일단 씻어요."

아니, 아니, 이렇게 다정할 수 없다. 내 아내가 이럴 리 없다! 영혼이 바뀐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아내가 아니라는 증거는 이렇게 차고 넘쳤다.

여자가 찌개 끓였는데 맛있다고 먹어 보라고 권했다. 나는 억지로 국물을 떠서 먹어봤다.

"와! 맛있다. 찌개."

하지만 이건 정말 한 조각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정말 찌개는 내 입맛에 딱이었다.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많이 먹어, LA 갈비도 했어."

나는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아내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도대체 밥상에 LA갈비라니? 미칠 것만 같았다. 대체 아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여자에게 복잡한 심정을 들킬까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표정을 감추려고 다시 찌개를 먹었다. 그러다 나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며 찌개 그릇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과연 이 여자는 내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는 항상 어떤 찌개를 하든 반듯이 참치를 넣었다! 그런데 이 김치 찌개에는 참치가 없다! 돼지고기뿐이다!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이 여자가 아내가 아닌 걸 확신했다. 그렇다면 내 아내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기 왜 그래?"

여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크고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야 정말 사랑해!"


나는 20년 만에 다시 사랑을 느꼈다.


       - 끄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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