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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Oct 08. 2023

도와줘요 Harvard university

숨은 꽃

최근에 처음 만난 한 작가는 술을 마시다가 자기가 무슨 과 출신인지 맞춰 보라고 했다. 그의 전공을 알게 되자 어느 대학인지 바로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원래 자기는 훨씬 좋은 대학에 갈 실력이었는데, 마침 입학 때 수능이 최악이어서 이 대학에 갈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사회에 나와서 상대에게 전공은 간혹 물어봤어도 대학은 물어본 적이 없다. 그마저도 마흔 중반을 넘어서는 묻는 경우가 없었다. 대입은 겨우 20대 초반에 이룬 아주 사소한 성과일 뿐,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처음 만나면 꼬박꼬박 자기 출신 대학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는 뽐내싶은 마음에, 어떤 사람은 자격지심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사람의 편견이라는 게 참 무지막지하고 고약한 데가 있다. 그래서 어떤 부당한 차별을 바로잡으려 할 때, 차별을 받는 쪽이 말하는 것보다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쪽에서 부당함을 말하는 게 더 잘 먹힌다. 그래서 학벌을 없애자고 할 때는 서울대 출신이 말해야 하고, 호남 차별을 없애자고 할 때는 TK출신이 말해야 한다. 인종차별은 백인이 나서야 하고 남녀 차별은 남자가 나서야 다. 아이러니다.

아무튼 나로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더 좋은 대학 갈 수 있었는데! 20년 전에!"라는 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정말 신기했다.


하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출생지. 고등학교. 대학교. 첫 직장. 각종 자격... 언제나 그 모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제 이런 증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거의 공식화된듯하다.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죄다 엘리트 출신이다. 검사 변호사 혹은 의사나 재벌이거나 하버드 출신, 때로는 경찰대 수석 졸업생이다. 주인공은 이런 자격에 특징 한 스푼 더하는 것으로 쉽게 캐릭터로 완성된다. 서민의 삶을 전혀 모르는 재벌. 감정이 제거된 검사. 장애를 가진 변호사나 의사 등등...

하지만 이 한 줌의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


양귀자소설 <숨은 꽃>이 생각난다. 만일 이렇게 밖으로 뽐내는 여러 자격들을 '꽃'이라고 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내면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가진 '숨은 꽃'의 사내를 그렸었다. 하지만 벌써 30년 전이다. 지금도 그 숨은 꽃이 아름다울지 나는 자신이 없다. 확실히 세상은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 보다 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꽃을 쫓고 숭배하것도 같다.

하지만 모르겠다. 나는 그런 꽃 같은 자격을 중요시하는 세상이나 사람을 후지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군가 내가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 있어서 우회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는 거라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처음 본 작가의 말 한마디를 이렇게 붙들고 늘어지는 게 그 증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결국,

하버드생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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