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처음 가게 된 장례식장. 고등학생의 머리로는 도무지 뭐라고 유족들에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왔어요. 할아버지는 잘 모르는데 XX 보러 왔어요. 밥 먹으러 왔어요.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영화에서 보았던 조금은 엄숙하고 격식 있는 말을 고민 끝에 떠올렸다. 하지만 안 하던 말이라 입에도 낯설어서 장례식장에 가는 동안 계속 연습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장례식장에 가서 인사를 마치고 친구의 부모님과 맞절을 했다. 부모님은 "안 와도 되는데.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밥 먹고들 가." 했을 때 나는 정중한 목소리로 엄숙하고 격식 있게 준비한 말을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마터면 친구 부모님들은 웃음을 터뜨릴 뻔하셨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잘 아는 제작사 대표가 캐스팅을 끝내고 드디어 제작에 들어간다는 뉴스가 난 거다. 잘 됐네. 힘들어하더니 결국 들어가는구나. 하고 기뻐했더랬다. 그런데 얼마 뒤에 배우가 배역을 고사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곧 제작이 기약도 없이 밀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걱정이 되는 마음에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기사 봤어. 이제 어떡하냐? 하자 녀석이 말했다.
"잘 될 때는 연락도 없다가, 안되니까 연락하고, 안되길 바란 거 아니야? 죄다 전화해서 어떡하느냐 묻고. 놀리는 것도 아니고."
녀석은 금방 농담이라며 웃었지만, 녀석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잘될 때도 잘 됐다고 기뻐해 줘야, 안됐을 때 위로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마치 상대의 불행을 자기 위안으로 삼으려고 전화한 걸 들킨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잘 될 때는 아무 연락도 없더니, 잘 안됐다니까 개나 소나 전화해서 어뜩하냐. 늘어놓으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염장이니까 말이다. 녀석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여태 살면서 상황에 적당한 말을 찾는 일은 언제나 이렇게 어려웠다. 나는 반올림하면 백 살인데도 그렇다. 요즘에는 몇몇 친구에게 "나 집 사람이랑 사이가 안 좋아. 이혼할 거 같애." 불현듯 그런 고백을 듣곤 한다. 이혼이라니! 나는 가슴이 덴 것처럼 계속 마음이 쓰였다. 내가 가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길을 가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혹시 답답한 마음을 혼자 삭이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연락은 간혹 했지만 이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녀석이 잘 있나 궁금한 거지. 야, 이혼한다며? 아직도 안 했어? 언제 이혼하려고? 보채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러다 보니 연락한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친구에게 무슨 헛소리야? 왜? 새끼 싱겁긴. 아, 나 바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며칠 전 그중 한 녀석과의 술자리도 마찬가지였다. 걱정은 되는데 말은 못 꺼내니 엇박자가 난다. 속으로는 이 녀석 너 괜찮아? 하는데 그 말은 못 하니 어색하기만 하다. 너 요새 (와이프랑) 어때? / 응? 뭐? / (아차차-) 그러니까 요새 주식 어떠냐고? / 무슨 소리야? 나 주식 안 해. / 아 안 한다 그랬나? / 아 이 새끼 하여간 이상해. 술자리는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녀석이 자기 상황을 이야기해서 걱정을 좀 덜었지만, 녀석이 털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나는 엄청 궁금했을 거다.
사람이 되고 싶어 2백 년간 스스로를 개조한 로봇 이야기가 있다. 바이센테리얼 맨. Bicentennial man. 로봇은 그렇게 개조를 한 끝에 2백 년 뒤에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진다. 그 영화를 볼 때 나는 그것을 “모든 인간사에 맞춤한 대응을 잘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았다. 어떤 매력적인 여성이 내게 “그동안 작가님을 사모해 왔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와 사귀어 주세요.”라고 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할 텐데도 나는 홀딱 넘어갈 게 틀림없다. 이렇게 인생 다반사에 나는 아직도 맞춤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모르는 것투성이다. 반올림하면 백 살인 내가 뭔가 그럴싸한 인간이 되려면 이백 년은 걸릴 것 같다. 그런데.... 설마 2백 년이면 되겠지? 153살이 됐을 때 만약 열여섯 번의 결혼 끝에 열여섯 번째 이혼하려고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땐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열여섯 번째 이혼을 보는 건 153살이 되도록 처음일 텐데? 여전히 맞춤한 행동을 모르지 않을까? 반올림하면 백 살인 나는 오늘도 걱정이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