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헤라클레스를 좋아하는 이유

괴물이 창궐하는 시대

by allen rabbit

나는 헤라클레스 이야기를 좋아한다. 반인반신인 헤라클레스는 신과 싸우고, 아틀라스 대신 지구를 들 수 있을 만큼 장사이기도 하다. 그는 온갖 괴물들을 몽둥이 하나로 때려잡는 일종의 먼치킨이다. 하지만 내가 헤라클레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 그의 살인 이력 때문이다. 그는 총 세 번의 학살을 자행하는데 첫 번째는 어린 시절 왕궁에서 음악 선생을 때려죽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왕궁에서 추방된 그는 18살까지 목동으로 살게 된다. 그 뒤 헤라클레스는 전쟁 영웅이 되어 테베 왕의 사위가 된다. 그리고 두 번째 학살이 벌어진다. 자신의 아들 셋과 아내를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다. 이 일로 헤라클레스는 그 유명한 12가지 과업을 수행하게 된다. 마지막 살해는 그를 변호해주던 친구를 죽여버린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이 일로 3년간 어느 여왕의 노예로 살게 된다.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죽이고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는 헤라클레스. 사람이든 괴물이든 그의 손에 저승으로 간 숫자가 하나 둘이 아닐 텐데. 이 세 번의 살인은 각별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저지른 이 살인이 도리어 그를 지극히 인간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자. 나는 초인이다.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나. 도대체 무엇이 나를 가로막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다. 나의 힘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사람을 좀 죽이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이냐?


처음 그가 음악 선생을 죽인 것은 아마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일 수 있다. 잔소리를 하길래 한대 쥐어박았더니 그만 선생이 죽어버린 거다. 그는 처음으로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거다. 두 번째 학살은 자신의 아내와 아들들을 살해한 일이었다. 그가 아내와 아들을 죽이는 장면은 너무나 끔찍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입장에서는 그냥 잠깐의 광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잠깐의 광기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되었다. 이 끔찍한 사건 이후 그는 스스로 죄를 씻기 위해 12가지 과업을 기꺼이 수행한다. 그가 죄를 저질렀다고 벌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반성은커녕 도리어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그는 제 발로 죄 갚음을 자청한다. 그는 이후에 세 번째 학살을 저지르고 역시 죄 갚음을 위해 3년간의 노예생활을 한다. 남자 중의 남자인 그가 노예가 되어 여왕이 시키는 데로 여자 옷을 입고, 여왕의 발아래에서 뜨개질을 한다.

헤라클레스는 종종 욱- 하곤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밥 먹 듯 살인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헤라클레스와 같은 힘을 가졌다면 나는 욱- 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죄다 죽여버렸을 거다. 그렇다. 내가 헤라클레스라면 나는 목동으로 살지도, 죄 갚음을 위해 과업을 수행하지도, 여장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왜 그래야 하는가? 나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초인인데, 인간세상에서 나를 벌줄 수 있는 존재는 없는데. 사람쯤 그게 누구든 쉽게 죽일 수 있는데. 이 두려운 존재는 언제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스승과 가족과 친구를 차례로 죽인 헤라클레스는 그러나 인간의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살육을 벌인 그 마음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찌 보면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힘을 자신의 이유로 쓴 것이 이 세 번의 학살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그 죄 갚음을 한다. 그의 힘은 신(神)의 것이지만 마음은 인간의 것이었다. 내가 헤라클레스가 매력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헤라클레스처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겁먹게 만들고, 마음대로 부리고 또 쉽게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성을 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여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만일 헤라클레스가 이렇게 했다면 그는 그가 잡은 수많은 괴물들처럼 괴물이라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인간처럼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렀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영웅이 되었다.


지금 이 시대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괴물이 되어 살고 있는 시대다. 그들의 손에 사람들이 자꾸만 죽어 가고 있다. 이들은 죽임을 당한 사람을 두고 죽은 사람 탓이라 비난한다. 그들은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그 엄청난 힘을 오로지 자신들을 위해서만 쓰고 있다. 괴물들이 창궐하는 시대다. 죽음이 소문처럼 번져가고 있다. 올리브 나무 곤봉을 든 헤라클레스가 있어 이 괴물들을 모조리 쫓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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