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힘든 세상

1029 참사와 언론매체

by allen rabbit

날이 갈수록 나와 의견이 다른 그들의 주장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들은 그들끼리의 공간에서 생각을 벼르고,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 반복해 가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그들의 말은 점점 선명성을 추구하느라 더욱 빈번하게 악의적이고 고약한 말을 한다. 전에는 그저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술 먹다 죽은 것뿐이란다. 너무나 소름 끼치고 상식과 동떨어진 말이라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깡패들이 매일 점호를 하며 조직에 충성하고, 회칼 앞에 목숨을 내놓도록 만들어서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10여 년 전에 이들이 토론을 할 때 내세우던 자료들은 금방 거짓이 드러나는 엉터리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들고 나오는 것은 지엽적인 부분을 과장하거나 고의로 다르게 말함으로써 그것이 엉터리 정보인지 파악하기 힘들게 만든다. 게다가 이런 잘못된 정보들은 대게 유튜브를 통해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것 같다. 이런 정보들을 침소봉대해서 그것을 근거로 어떤 논리를 개발하면 그 논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 논리가 술 마시러 가서 죽었다느니 하는 식이니 더 할 말이 없다. 같은 성향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퍼져 나간 이야기를 다시 여러 채널을 통해 반복해서 듣고 내면화한다. 심지어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대통령이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환장할 지경에 이르렀다.


기득권을 가진 일반 레거시 매체들은 또 어떤가? 매체 환경이 나빠지면서 클릭에 목을 매고 있다. 때문에 여러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의 밀착 관계를 이용해 기사를 따내려 한다. 그래서 기사는 소스 제공자들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파해 친다거나, 비슷한 경우의 과거 사례와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권마다 전혀 다른 입장의 기사를 버젓이 내놓고도 모른 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레거시 미디어들의 태도를 잘 알고 있다. 뻔히 보이는 광고성 기사나 정치적 시도가 듬뿍 담긴 기사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본다. 그래서 대강 큰 기사 타이틀만 훑고 나서 사람들은 댓글을 본다. 댓글을 읽어야 비로소 이 기사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기사를 아무리 천천히 일독한다고 해도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며, 사건의 맥락은 어디에 닿아있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누구도 기사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기사는 더욱 유튜브 같은 매체나 유명인의 입만 쳐다보게 됐다. 자신들이 사건을 분석한데도 사람들은 그 속셈을 금방 알아차리고 호응하지 않으니 유명인의 말을 가져다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공작원의 짓이라느니, 외국 미신을 믿다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느니. 좋은 기회라느니 하는 끔찍한 말이 그 탓에 잘도 유통된다. 속이 뒤집히고 욕이 튀어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바로 이런 말을 들으며 시원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설 자리가 사라졌다. 이게 같은 사건을 바라보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도무지 충격적이기만 하다. 마치 그들과 나는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이런 사정은 점점 심각해져만 가는 중이다.


생물이 진화해 온 방법은 돌연변이라고 한다. 돌연변이는 각 개체에게는 치명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양성을 만드는 과정이 되기도 하고,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탈출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레거시 미디어의 몰락과 유튜브 등 여러 매체들의 활개도 마찬가지 아닐까? 레거시 미디어가 기존의 종이라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바뀐 환경에서 돌연변이로 나타난 수많은 유튭과 매체들은 계속 자기 자리를 넓혀가는 중이다. 그리하여 이 생태계가 과연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변화가 늘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우리가 이 변화를 막연한 인간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는 이유다. 결국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고 이들과 쉼 없이 싸우는 수밖에 길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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