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지리산 국제 오르겔 음악제를 다녀왔다. 조지아 어벤저스 멤버가 음악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4명의 멤버가 축하를 하기 위해 내려갔다. 그중에는 최근 결혼식을 한 멤버도 있었다. 사당에서 12시에 출발한 우리는 7시가 다 되어서야 행사장이 있는 하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행사는 다음 날 오후 4시였고 행사 끝나고 여차하면 이틀 뒤 아침에나 서울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자 새댁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날 시댁에 김장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에서 시아버지가 축사를 하며 시댁에는 오지 말라고 해서 갈채를 받았는데 배신이었다. 과연 사람 일은 알 수 없었다.
오르겔은 규모가 작은 파이프 오르간을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행사 장소인 지리산 아트팜에서 본 오르겔은 파이프 오르간 하면 생각나는 그런 거대한 장치의 오르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건반 달린 커다란 상자 같았는데, 붉은 바탕에 멋진 매화나무가 그려져 있어서 마치 크고 예쁜 뮤직박스 같았다.
행사 준비를 마치고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시간.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은 우리를 격하게 환대해 주셨다. 그중 임실에서 하동까지 일부러 저녁 식사를 준비해 온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욕쟁이 할머니처럼 욕을 걸쭉하게 잘도 해 댔다. 자기가 음식을 해 온 게 모두 음악감독 때문이라며 욕을 했고, 노래를 하라고 하면 냉큼 노래를 하고는 또 노래시킨다며 욕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마다 너무 재밌어서 배꼽을 잡아야 했다. 노래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유명한 거문고 연주자였다! 게다가 이 뛰어난 연주가들이 모두 너무 소탈해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다음 날 오후 4시, 깊은 산골에서 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날 행사의 중심은 홍성훈 마이스터가 제작한 오르겔이다. 홍성훈이 마이스터를 취득한 독일에서는 마이스터로 25년간 일하면 관련 부서의 장관이 그 노고를 증명하는 증서를 들고 직접 마이스터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저 증서 한 장을 전달하는 간단한 행사 같지만, 국가가 마에스터의 노력을 기억해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무척 감동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행사가 없다. 그런 이유로 제2회 지리산 국제 오르겔 음악제에서는 홍성훈 마이스터에게 지난 25년간의 노력을 증거 하는 증서를 직접 제작해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날의 행사는 이 증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음악제는 오르겔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연주회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 행사의 압권은 단연코 마지막 공연이었던 피리와 오르겔의 협주였다. 김세경 연주가의 상영산 피리 독주로 시작된 연주. 현장에서 듣는 피리 소리는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귀머거리가 난생처음 음악을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이어지는 오르겔과의 협주곡 "더: 갈"은 이 연주회의 백미였다. 앞의 모든 연주도 기대를 훨씬 뛰어넘은 것들이었지만 이 곡은 각별했다. 서양의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인 파이프 오르간이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피리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낯선 두 악기의 화음은 쓸쓸하면서도 울긋불긋하고 또 격정적이면서도 다정다감해서 두근두근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우리 네 명이 하동의 깊은 골짜기로 내려오며 보았던 적막하고 쓸쓸한 가을 풍경도, 욕으로 사람들을 깔깔거리게 만들던 거문고 연주자의 격정도, 이 뛰어난 연주자들이 낯선 우리 4인방을 환대할 때 느꼈던 가슴 두근거림도 모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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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기 전 우리 조지아 4인방은 섬진강을 찾았었다. 마침 청명한 날씨에 햇볕이 따뜻했고, 섬진강은 햇살을 반짝반짝 비추며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섬진강 강변 모래사장에 자리를 펴고 누워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다 같이 낮잠을 즐겼다. 하늘은 파랗고 산은 울긋불긋했으며 햇빛은 따뜻했다.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섬진강. 우리는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을 것만 같았다. 새댁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김장은 이미 시부모님께서 다 하셨고, 내일은 김치 가져가라고 부르신 거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너무 얄팍했다. 생각해보면 하동에서의 이틀도 그랬다. 굳이 한 시간 남짓의 공연을 보러 하동까지 가야 하나 했지만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부족한 게 없었고 섬진강은 그리고 하동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1시간 남짓의 공연은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우리는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