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영화도 그렇다. 1985년 아카데미 수상작은 <아마데우스> <킬링 필드> <인도로 가는 길> 등이었다. 그 해 <인디아나 존스>는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치부돼서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바로 전해에는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이 본상은 하나도 못 받고 시각효과 부분 공로상이나 받던 그런 때였다.
고상함과 품위 그리고 격조를 우선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미국 영화도 그렇고 이 다큐에서 비치는 미국의 모습도 그렇다. 매킨토시가 출시된 시절.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 싸우던 시절. <백투 더 퓨처>가 극장에 걸렸던 시절. 당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희망에 찬 나라였다. 아메리칸드림이 정말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 다큐를 보며 마음이 어지러웠다. 당시에도 미국에 인종이나 사회적 갈등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텐데, 왜 옛날 그 시절은 이렇게 좋게만 보이는 걸까? 시상식에서 수상자의 마이크를 뺏거나, 농담하는 누군가의 뺨을 후려치지 않던 시절이라 그럴까? 다큐에 비치는 미국의 밤거리는 활기찼고, 흑인들은 길거리에서 춤 솜씨를 뽐냈다. 그 해 개봉했던 <플래시 댄스>의 주인공도 밤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했고, 백인들은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댄서들을 흑인들과 함께 보고 즐겼다. 비 오는 거리에는 흑인 경관이 춤을 추며 교통정리를 했더랬다. 역시 이 다큐에서도 아이들은 인종을 불문하고 뒤섞여 다 함께 <위 아더 월드>를 부른다. 그러니 정말 좋았던 시절처럼만 보인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 중이고, 우경화의 몸살을 앓고 있고,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중이다. 세상은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위 어더 월드는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어제는 오후에 집을 나섰다가 문득... 간밤에 침대 머리맡에 살포시 놓았던 코딱지 두 덩이가 떠올랐다.
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용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나는 녀석들을 찾았다. 놈들은 침대맡에 잘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작았다. 끄집어낼 땐 <토탈리콜>의 아놀드가 위치 추적기를 꺼낼 때만큼 커다란 줄 알았는데. 엄청 아팠는데, 그냥 코딱지만 했다.
1985년의 미국이 그렇게 행복하기만 했을까. 그저 지나 간 날들은 다 좋아 보이는 거 아닐까. 지난밤 코딱지가 주먹만큼 우람하게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은 무엇보다 그 시절 내가 좋아하던 가수들을 죄다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 시절에는 대게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다. TV에서 가수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미국 가수는 더욱. 위아 더 월드를 부를 때 워낙 아싸였던 프린스와 (과연) 약아빠진 마돈나는 참석을 안 했지만, 다큐 마지막에 완성된 "we are the world"가 흘러나올 때는 정말 엄청 찡했더랬다. 신디로퍼는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아름다웠다. 그땐 쉴라 E를 참 좋아했는데... 노래하는 의미가 좋다고 기꺼이 톱스타들이 참석을 하던,.. 아! 그땐 정말 좋았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지금은 절대 이런 시도를 할 수 없을 거다.
뭐, 어쩌면 K-POP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역시 재능기부였던 잼버리 공연도 치러봤고, 탬버린을 흔든다면 3년 안에는 될지도 모르겠다. "we are the world" 뺨치는 제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