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Conclave

2025. 3. 25

by allen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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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한 남자가 어디론가 급히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입는 옷을 통해, 그가 도착한 장소를 통해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는 교황을 곁에서 모시는 추기경이다. 그리고 영화는 교황이 죽으면서 시작된다.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는 경우는 영화가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즐길 것은 그가 봉착하게 될 난관과 어려움이다. 우리는 그가 이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보게 될 것이다.


옛날 교회에서는 마녀를 판단할 때 마녀라고 끌려온 여자를 물에 집어넣었다. 만일 여자가 물 위에 뜬다면 마녀고, 가라앉으면 마침내 마녀를 응징한 것이다. 이 일의 중심에 있던 교황청에서는 교황이 죽으면 황금 망치로 머리를 두 번 때리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죽은 줄 알았던 교황이 혹시 살아 있으면 그때 망치로 확실히 죽이면 되는 거다. 과연 천주교식이라고 생각한다. 첫 장면에 교황이 죽었지만, 망치로 때리지는 않았다. 때문에 나는 시작부터 무척 아쉬웠다.


교황이 선종한 방이 봉인되고, 교황청은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된다. 그리고 전 세계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뽑는 비밀회의 콘클라베를 시작한다. 콘클라베의 결과는 투표용지를 소각하여 외부로 알리는데 미결 시에는 검은 연기, 선출 시에는 흰 연기가 나게 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교황을 뽑을 때까지 음료와 식사량을 점진적으로 줄여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하도록 압박한다고 한다.


이렇게 추기경들에게 교황 선출을 압박하는 것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의 속 마음이야 어떻든 교황이 빨리 정해지지 않으면 그만큼 교구 전체가 흔들릴 테니 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탄핵 국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다음 두 가지 부분에서 주인공에 몰입하는 것이 힘들었다. 첫째는 내 똥이 제일 급하다고, 영화 전체의 긴장감이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 나의 긴장감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크리스천이 아닌 나는 교황청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교황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적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할 것은 확신이다."


확신은 우리를 무모하게 만든다. 상대를 단정하게 만든다. 과연 누가 교황이 될 자격이 있는지 투표하는 가운데 추기경들은 과연 자신의 확신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거나 혹은 받아들이기 싫은 무엇이든?


단장 로렌스가 콘클라베를 집행하면서 주요 교황 후보들의 진실 혹은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천주교에서 가장 유명한 비리는 무엇인가? 단연 아동 성 착취다. 당연히 이 영화에서도 이 부분을 다룬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처럼 싸한 맛이어야 하는데 30년 묵은 간장 맛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교황이 되기 위해 협잡을 하는 정치적인 추기경도 나온다. 교황은 승하하기 전에 이 사실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말했지만, 교황은 정작 중요한 서류를 꽁꽁 감춰놨다. 왜 그래야 했는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을 들추는 우연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식당에서 한 추기경이 로렌스 추기경에게 말한다. 식당에 모여 앉은 추기경들이 피부색에 따라, 언어에 따라 모두 따로 앉아 식사한다고. 그런데 왜 우리 이탈리아 추기경들만 저들을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나는 굉장히 직설적인 이 질문에 대답을 듣고 싶었다.


콘클라베의 결론이 지지부진한 사이 폭탄 테러가 일어난다.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추기경들은 정치적인 격론을 펼친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테데스코 추기경의 격분에 베니테스 추기경이 말한다. 전쟁을 겪어 봤느냐고. 증오를 퍼뜨리고 거기에 편승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느냐고. 카불에서 온 베니테스 추기경의 말은 훌륭했다. 하지만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고 전쟁을 불사하자는 테데스코 추기경은 첫 등장부터 비호감으로 묘사된다. 함부로 말하고, 시종도 함부로 대한다. 반면 카불에서 왔다는 베니테스 추기경은 첫인사에서 가난한 자들을 축복하고, 고생하는 수녀들을 거론한다. 때문에 이미 좋은 사람인 테데스코 추기경의 좋은 말은 내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확신은 마지막에 로랜스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주고 만다. 그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관객인 우리도 그랬는지 모른다.


“욕망은 권력으로 향하는 나방이다.”


<콘클라베>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문제는 이 영화가 가려는 방향을 보여준다.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로렌스는 교황을 욕망하는 다양한 추기경들과 하나씩 맞서게 된다. 우리는 추기경도 그저 욕망하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계속 드러나는 추악한 욕망의 이면은 극 전체를 뒤틀거나, 주인공 로렌스를 궁지로 몰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추기경들은 로렌스가 주장하는 양심의 호소에 반응한다. 추기경들은 아직 양심이 살아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내게 추기경들의 이런 모습은 정말 나이브하게 보였다. 확신을 버리고 진실에 다가가려 했던, 그리고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던 주인공의 고난은 내게는 그저 끔찍하게 순진한 모습으로 만 보였다.


그래서 <콘클라베>는 싱거웠다. 나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양심 따위 짓뭉개는 기득권 추기경들의 나라에서 한 달 넘게 끔찍한 콘클라베를 지켜보는 국민이다. 양심은 그렇다 치고 그래도 상식은 남아있겠지.라는 생각마저 산산이 박살 난 나라의 관객이기 때문이다. 괜히 교황청과 <콘클라베>에 미안한 마음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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