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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Dec 03. 2022

오디오는 남자지!

나는야 개 꼰데! 흑!

지리산 음악제에 갔을 때였다. 사람들과 함께 예술감독의 방에 갔다. 그곳에는 메킨토시사의 여러 앰프와  가슴높이까지 오는 커다란 스피커가 사무실 한쪽에 멋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깜짝 놀라자 오디오 마니아들이 그러듯 자기 시스템에 대해 겸손을 가장한 자랑을 했다. 그래서 소리 좀 들려달라고 졸라서 들었다. 과연 소리가 굉장히 좋았다. 오디오에 대해 칭찬을 하려고 할 때 같이 갔던 젊은 여자 동행이 감탄하며 말했다.

"우와- 소리가 고음도 완벽하고 무거우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순간, 나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오디오야 말로 중년 남자들의 호화 취미생활인데 이 젊은 여자 친구가 알리가 없을 텐데? 아니 그뿐인가? 어느 정도 소리를 분별하는 귀를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훈련이 좀 필요한데 그쪽은 너무 젊잖아. 근데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오바 아니야? 피식 웃었다. 입이 간지러워 한마디 할뻔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젊은 여자분은 자그마치 뮤지컬 음악 감독이다!

오디오는 늙은 남자여야 알 수 있다니! 이게 무슨 개가 된장나물비벼 먹는 소리냐?

으아아! 꼰대! 꼰대! 꼰대! 꼰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정말 조심해야지. 각오를 했다.


며칠 전 아는 피디가 영화 시사회에 불러서 갔다. 피디님을 한 달 만에 보게 돼서 너무 반가웠다. "아휴. 피디님 살이 많이 빠졌어요!" "아 그래요? 살 좀 빠져야 해요."  이런 다정한? 인사말을 나누고 극장에 들어와 앉았다. 나는 갑자기 이불킥을 해야했다. 아니 무슨 놈의 첫인사가 살 빠졌단 얘기야? 니가 미쳤구나? 그것도 젊은 여자 피디님한테? 갑자기 너무 창피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최근 이 피디님을  만날 때마다 살쪘어요. 살 빠졌어요. 내가 이 지랄맞은 말을 계속 첫 인사로 했다는 걸 깨달았다! 으아아!

ㅜㅜ


두 분께 정말 사과드립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정말 한 치도 어긋나지 않은 개 꼰대 아저씨였다.

반성하고 근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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