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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Dec 06. 2022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촘스키박사님 당신 틀렸어!

책리뷰

촘스키라고 대학 다닐 때 날 따라다니며 무지 괴롭히던 사람이 있었다. 특히 그 시절 시험 기간에 내 책상에 가장 많이 적혔던 분 중 하나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됐던 학자. 그런데 최근에 보는 책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에서 이분의 말이 조목조목 까이는 걸 본다. 아니, 학교에서 배울 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던 분의 이론이 까일 땐 왜 이렇게 이해가 잘 되나? 귀에 아주 쏙쏙 들어온다. 

그는 인간만 유일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었다. 인간은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일종의 어학용 하드웨어를 뇌에 장착하고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이게 반세기 만에 진화생물학에 까이는 중이다. 날 대학 시절 그렇게 괴롭히더니 아휴 쎔통이다! (하지만 존경합니다.)이 책은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밈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언어도 뇌에 있는 어떤 소프트웨어에서 밈으로 처리된다는 의견을 펼치고 있다. 

생각해보면 10여 년 전에 내가 읽던 뇌과학 책들은 거의 뇌에 관한 예측뿐이었다. 아마도 이건 이래서 이렇게 작동하는 거 같고, 저건 아마도 저래서 저렇게 작동하는 거 같다. 하는 식이었다.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었다. 그저 죄다 추측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기억나는 내용 중 가장 신박했던 건 뇌에 조그만 인간이 타고 있는 호문클루스 그림이었다. 호문클루스란 뇌가 담당하는 신체의 각 부분을 뇌에 그려 넣은 일종의 뇌지도다. 그래서 호문클루스는 마치 뇌 속에 작은 인간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뇌 속의 조그만 인간이 사람을 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때 봤던 뇌과학 책들 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최신 뇌과학을 결론 냈었다. 인간의 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고, 누군가 뇌에 관해 이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대게 거짓말이라고 보면 맞다.라고. 

하지만 이 즈음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 같다. 밝혀진 새로운 이야기가 참 많다. 인간의 뇌 가장 깊은 곳에는 파충류의 뇌가 있다는 식의 설명도 최근에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까이는 중이다. 그만큼 이제까지 쌓아 온 과학적 성과는 우리들에게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중이다. 언어학에 대한 오랜 논쟁도 이렇게 반박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한편으로 창조주를 믿는 사람에게는 이건 재앙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이 뇌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간이라는 창조적 생명체의 신비는 점점 사라져 가는 중이니까 말이다. 인간은 지구상의 어느 생명체보다 훌륭하거나 각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인간이 지구상 만물의 주인일 리도 없다. 나는 인간도 아날로그처럼 보일 뿐이지 그저 디지털 기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들이 들으면 유치해서 웃겠지만) 컴퓨터가 기계적인 하드웨어로 연산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유기체로 연산하는 게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어쩌다 우연히 지구에 살게 된 존재들일뿐이고,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작은 유기체들의 집합체일뿐이다. (아는 척 하지마라!) 

아무튼 내 대학시절 늘 D 학점만 주시며 괴롭히던 촘스키 박사님에게 이제 “당신 틀렸어!” 소리칠 수 있어서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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