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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Dec 12. 2022

KARA is back!

그 시절 아저씨 팬 중 하나

카라가 돌아왔다!  

그룹 결성 15주년 기념으로 다시 컴백한 것이다. 얼마 만에 보는 카라인지 모르겠다. 복귀곡 <When I move>도 역시 카라다운 노래였다. 


카라를 알게 된 건 10여 년 전 작업실이 충무로에 있을 때였다. 지하철역 전광판에서 카라의 <루팡> 뮤비가 소리 없이 반복 재생됐었다. 뮤비 속 검은 옷을 입은 그녀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루팡>을 찾아 듣고 카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공사판에서 다섯 멤버가 아주 소수의 팬과 팬미팅하던 흑역사를 알게 됐고, 생계형 걸그룹이라는 카라의 팬이 됐다.   


다시 카라를 보자 10년 전 그때 내 상황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난 최악을 달리고 있었고 카라가 많은 위안이 됐다. 그때 나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글은 안 팔렸고, 마흔이나 먹고도 이용이나 당했다.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은 이명박. 뉴스는 또 얼마나 열불이 나던지. 

그리고 다시 카라가 돌아온 2022년. 

어째서인지 10년 전보다 뉴스는 더 끔찍해졌다.  


카라가 공백을 가지는 사이 나는 카라의 노래를 전혀 잊고 있었다. 거기엔 카라 멤버 구하라가 세상을 뜬 일이 컸을 것이다. 그녀가 죽었을 때 나는 차마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것 같다. 이번에 카라가 복귀하면서 옛날 노래를 다시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카라가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의식적으로 구하라는 보지 않으려 했다.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드디어 그녀를 볼 수 있게 되자 나는 많이 울어야 했다. 

그제야 조금씩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애도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뉴스를 보지 않고,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보게 되자 꾹꾹 눌러왔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한동안 그녀를 보는 시간을 갖고 나서야 그녀의 부재를 받아 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눈물 없이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비로소 나의 애도가 끝난 것이다.  

몇 달 전 이태원에서는 끔찍한 참사가 있었다. 하지만 희생자들은 뉴스에서 지워졌고, 어떤 자들은 끔찍한 말로 애도하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우리는 두려움에 참사를 입에 올리기조차 어려워 했다. 그렇지만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들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한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 한없이 미뤄질 뿐이다. 우리를 포함해서 이 사건을 아는 사람들은 추모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의 부재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구하라가 내게 그랬듯이.  

그러나 그들은 모두 마음을 눌러 놓으라고 강요한다. 그럼 그 마음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말이지 끔찍한 자들이다. 


카라의 신곡 <when I move> 뮤비 마지막에는 화면에 여섯 개의 마이크가 비춰진다. 멤버들은 그렇게 구하라의 마이크를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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