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영, 구교환, 2025년
순수하다는 것은 힘이 세다. 언제나 더 진실되고, 감출 것이 없기에 힘이 세다. 순수하기에 감정을 감출 줄도 잘 모른다. 그래서 젊음의 한때는 더 아프고 힘들다. 파토스로 들끓는 청춘의 사랑은 아주 긴 미래가 걸렸음에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기에 더 아름답다. 아픈 자신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느라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해서 더 슬프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 청춘의 한때를 지난다. 그래서 아프지 않으려고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이런 감정을 감추고 포장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렇게 영화 <만약에 우리> 속 청춘의 사랑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짙은 스모키 화장에 담배를 피우며 등장하는 정원. 그녀는 고아지만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통통 튀는 쾌활함과 강한 생활력, 다정한 매력이 눈부시다. 친구로 남기를 바라는 정원과 그런 정원을 좋아하는 은호의 밀당을 볼 때는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부드러운 깃털이 내 심장을 간지럽히듯 마냥 들떴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은 서로의 미래를 위해 힘이 되어 준다. 남들이 보기에는 심심해 보이는 커플이라도 평탄하게 살았으며 좋겠다던 정원의 바람은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순수함은 상처를 주는데도 셌다. 정원에게 뭐든 해주겠다고 다짐했던 은호는 곤궁함과 패배감에 비참해지자 달아난다. 고시원의 한 뼘 햇빛만 자신의 것이었던 정원에게 은호는 커튼을 걷으며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모두 정원에게 주었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동굴에 숨은 은호는 이제 정원이 걷은 커튼을 닫고 햇빛을 가린다. 순수함은 현실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지하철역에서 떠나는 정원을 발견했을 때 한발 물러서던 은호의 모습. 그리고 몇 년 뒤 핸드폰에서 은호의 번호를 지우고 버스에서 펑펑 울던 정원의 모습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렇게 한 시절이 끝난 것이다.
만약에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만약 그때 내가 널 잡았다면, 만약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젊음의 한때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묻곤 한다. 만약 그때 내가 이랬다면, 만약 그때 내가 저랬다면 어땠을까. 만약 우리가... 어리석은 오해, 성급했던 결론, 감정에 휩쓸린 실수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지난날을 돌이킬 때면 우리 마음은 아련해진다. 그 모든 후회를 나는 <만약에 우리>의 은호와 정원처럼 끌어안을 수 있을까. 글쎄,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저 아닌 척, 그렇지 않은 척 거짓부렁이나 늘어놓지 않을까.
그래도 영화 <만약에 우리>가 끝이 났을 때, 정원과 은호처럼 나도 훌쩍 큰 기분이었다. 정원의 말처럼 그 순수했던 시절도 여전히 내게 남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젊음의 한 때, 그 시절 먹먹하던 사랑의 실패를 아프게 이야기하는 <만약에 우리>는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영화이다.
뱀발.
<만약에 우리>는 여러면에서 <라라랜드>를 닮았다. 꿈을 쫓던 젊음의 달콤한 사랑이 현실의 고난 앞에 결별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 나는 계속 이상은의 <언젠가는>이 흥얼거려졌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 헤어진 모습 이대로”
이 영화의 원작인 <먼 훗날 우리>를 예전에 보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두 주인공이 함께 살았던 집은 특이하게도 다른 수많은 방으로 된 집들을 통과해야 있는 정말 조그만 방이었다. 중국의 현실과 청춘의 사랑이 마음 아팠었다. 언제 이 영화도 다시 한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