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 2010년
레바논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내가 도착하기 전날에도 시내에서 테러가 있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보게 된 것은 장갑차들과 무장한 군인들. 그리고 검은 연기를 올리며 폐타이어가 타는 풍경이었다.
레바논은 기독교도들과 이슬람 간의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인접에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까지. 레바논의 위치 자체가 심각한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에는 종교의 차이로 발생한 충격적인 장면이 많이 있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레바논이라고 지명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는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황량한 풍경이 보이고, 수용소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깎이고 있다. 그사이 발뒤꿈치에 문신이 있는 한 소년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분노와 울분이 가득한 소년의 눈빛은 <그을린 사랑>을 그저 멜러일 거라 생각한 극동 관객의 멱살을 잡는다.
기독교인인 나왈 마르완은 와합이라는 무슬림 이민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와합은 나왈의 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녀의 아이 역시 고아원으로 보내지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커다란 증오와 사랑의 시작이 된다.
전쟁의 비극을 다룬 영화는 많다. 한 개인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증오와 혐오 그리고 죽음을 겪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나왈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복수를 다짐하지만,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나고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비극은 다시 그녀를 붙잡는다. 마침내 그녀가 오랫동안 찾아왔던 진실과 마주했을 때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나는 특히 나왈을 고문했던 사내가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도 못하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나왈은 그에게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충격을 받고 수영장 벤치에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다. 게다가 아주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내의 모습은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끔찍한 존재로 만드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왈이 겪은 모든 비극은 오직 전쟁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전쟁의 비극만이 아니라, 진실이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나왈이 목도한 끔찍한 진실을 모른 채 묻어두었다면 아이들은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문 기술자였던 사내도 역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왈은 진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선택을 한다. 나왈이 남긴 편지에는 이런 말이 반복된다. “함께하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이들은 어쩌면 영원히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진실을 밝히고 함께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그녀는 말한 것일까?
증오와 반목, 혐오로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쟁은 기꺼이 총질을 하고 사람을 불 태우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왈이 겪어야 했던 비극과 그곳에서 알게 된 진실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왜 진실을 세상에 밝혀야 했을까? 모두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아들과 딸이 모두 그 진실의 당사자이기에 나는 그녀의 선택에 쉽사리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아직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절의 <증언>이나 <길소뜸>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유고 내전을 다룬 <비포 더 레인>까지. 내가 레바논에 도착했을 때에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었다. 뉴스를 찾아보니 지난 10월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교전이 있었다. 수없이 전쟁과 테러가 반복되는 이 땅에서 어쩌면 “함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내내 전쟁의 참상에 몸서리치던 나는 진실에 대한 <그을린 사랑>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비극은 진실을 밝힌다고 약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