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ll Tear Us Apart / NETFLIX
청춘 로맨스 영화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만약에 우리> <먼 훗날 우리>를 거쳐 <청춘적니>를 보게 됐다. 그리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영화를 보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했기에 이토록 영화를 보기가 힘든 것일까?
군대에 있을 때 탈영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여자친구 문제다. 소위 고무신 바꿔 신는다는 여자친구의 결별 소식에 병사들은 서슴없이 군대 담장을 넘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결별을 알리면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젊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세상이 멸망한 것 같은 큰 상실감을 느낀다.
그렇다. 젊을 때의 사랑은 담벼락을 걷는 아슬아슬한 기분이다. 내 마음이 삐끗하거나 상대의 마음이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다. 또 상대의 마음을 예측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마음도 예측하지 못한다. 젊은 사랑은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때로는 불안함을 떨치고자 성급하게 헤어지자 말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아주 시시한 이유로 참담한 결별을 맞기도 한다.
“황홀한 착각으로 시작해서 참담한 오해로 끝난다.”
흔히 젊은 시절의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곤 한다. 상대에 대한 황홀한 착각, 혹은 상대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황홀한 착각으로 시작한 사랑이 청춘의 불안으로 인해 생긴 참담한 오해로 종종 끝을 맺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춘적니>의 두 청춘은 어떤가. 17살 뤼진양은 첫눈에 반한 링이야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두 사람은 오로지 함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 보금자리를 꾸린다. 뤼진양은 가족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 그저 말썽꾸러기 친구가 하나 있고, 제대로 된 집을 사서 여자친구와 살고 싶어 할 뿐이다. 그래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부지런히 성실하게 해 낸다. 그 사이 링이야오는 대학교에 다니고 일하러 나간 뤼진양을 기다린다.
뤼진양이 건설 부조리와 싸우고 링이야오는 노골적인 엄마의 반대에 부딪힌다. 두 사람은 오로지 둘이 함께 있기 위해 노력하고 여러 희생을 치른다. 뤼진양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진 남자가 나타난다. 링이야오의 엄마는 노골적으로 이 사내와의 결혼을 부추긴다. 이 남자의 등장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가? 자칫 젊은 남자가 부릴 수 있는 자격지심으로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는가? 영화는 그보다는 그런 감정을 모두 꾹꾹 누르고 뤼진양이 계단에 앉아 햄버거를 먹도록 한다. 그리고 링이야오는 남자의 마음을 헤아려 꼭 안아주게 한다. 그래서 이 사랑은 더 튼튼해지는가? 영화는 그보다는 친구의 배신으로 남자가 큰 경제적 위기를 맞게 한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쌓였을까? 아니다. 남자는 여자가 모르도록 또 꾸역꾸역 그 감정을 누른다. 배신한 친구를 한 대 치기보다 괜스레 실외기를 걷어차게 만든다.
나는 왜 이 영화가 이토록 보기 힘들었던 것일까?
영화 <청춘적니>의 사랑은 황홀한 착각으로 시작해서 참담한 오해로 끝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두 사랑이 겪는 부침은 청춘의 불안이 아니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현실적이고 노골적인 문제인 “돈”이 공교롭고 짓궂게도 뤼진양의 발을 번번이 걸 뿐이다. 영화 속 두 사람의 사랑에는 담벼락 위를 걷는 아슬아슬함이 없다. 두 청춘의 발을 거는 불편이 있을 뿐이다.
영화 <청춘적니>에는 청춘과 멜러라는 두 명제에 담겨 있어야 할 불안과 떨림이 담기지 않았다. 떨림이 없는 영화는 관객에게도 교감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보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