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The King's Warden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2026년

by allen rabbit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계속 떠오르는 의문은 어째서 이 감독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영화는 800만을 넘기고 순항 중이다. 오늘도 내 페북 피드에는 이 영화의 배경인 청령포가 구경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로 가득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떠 오른 영화는 <가문의 영광>, <조폭 마누라> 같은 영화들이었다. 그 영화들도 흥행에 성공했고 나는 그때도 이유를 몰랐다. 한참 부족해 보였을 대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영화 제작이 가능했을까? 그간의 허술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어떻게 계속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왕과 사는 남자>는 또 어떻게 흥행을 할 수 있던 것일까?


사람들은 다들 울고 웃는다는 이 영화에서 나는 딱 한 번 눈물이 났다. 그것은 단종이 청령포에 있다는 것을 안 백성들이 몰려와서 물건을 담은 보따리를 강에 던질 때였다. 이 장면 외에 나는 이 애달픈 단종의 사연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장면은 단종과 촌장 엄홍도 사이의 이야기도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허술한 영화를 보면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걸까? 현실의 청령포를 구경하러 장사진을 이룰 만큼 공감이 되는 걸까?


<왕과 사는 남자>의 연출은 전혀 세련되지 않다. 단종이 역모를 위해 나설 때 비가 내린다. 중요한 장면이고 뭔가 강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뻔히 보인다. 촌장 엄흥도가 마음을 바꿔 단종을 따라나서는 장면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금성대군의 반란군은 또 어떻게 실패를 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대강대강이다. 주인공 엄홍도는 등장부터 말이 많다. 영화적인 장치에 기대지 않고 소설이라면 지문이 됐을 것들을 죄다 대사로 읊조린다. 캐릭터라고 넘기기에는 영화적인 장면과 연출의 요소를 죄다 이 한 사람의 말로 얼버무리고 있다. 대강 분위기로 넘기고, 대강 말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뉘앙스들이 내러티브를 압도한다. 그러니 남는 게 없다.

단종의 목을 조를 때도 마찬가지이다. 엄홍도와 부서지는 장지문, 그리고 단종의 익스트림 클로즈 샷의 연속은 연출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냥 커트를 적당히 대강 나눴을 뿐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니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이다. <해운대> <제7광구> <디 워> <조폭 마누라> <가문의 영광> 등이 흥행할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대체 영화의 어떤 힘이 사람들을 극장으로 가게 만드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이 영화가 가진 유일한 장점은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영화의 룩이 좋다는 것이다. 비교적 클래식한 필름 룩을 가지고 있는데, 원맨쇼에 가까운 엄홍도의 가벼운 코믹이 들떠버리지 않게 만드는 데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국영화를 망하게 만든 예전의 그 이상한 법칙들이 떠올라 무서웠다. 한동안 이런 것, 이런 것이 있어야 흥행한다는 법칙이 암묵적으로 영화판을 떠돌았다. 하지만 그런 법칙에 따르고 그것을 강조해 만든 영화들은 줄줄이 참담한 실패를 했다. 영화의 흥행 법칙이란 없다. 영화의 활력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 새로운 흥행 법칙을 만들고, 또 새로운 영화가 그 법칙을 깨는 순환. 이것이 영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영화가 새로운 흥행 법칙을 만들지도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일 이 영화가 새로운 흥행 법칙을 세우게 된다면 본의 아니게도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관뚜껑이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내가 이유를 몰라도 800만을 넘겨 흥행 중이다. 내가 감독의 대본과 연출력을 문제 삼아도 상관없다. 감독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고, 영화는 그 증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난 뒤에도 800만을 넘긴 이 영화를 사람들이 좋았다고 기억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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