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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Feb 09. 2023

동서양 계절 신화 이야기. 원천강본풀이와 페르세포네

<원천강본풀이>이라는 사계절을 관장하는 신녀 오늘이의 이야기를 읽었다. 인간 세상의 사시사철을 주관하는 곳이 저승 세계의 원천강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원천강을 관리하는 부부가 있다. 그런데 이 부부가 이곳으로 올 때 인간세계에 이제 막 세 살이 된 딸을 남겨놓고 와야만 했다. 그래서 이승에 혼자 남겨진 아이는 이름도, 부모 얼굴도 모른 채 오늘 발견됐다는 의미로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자라게 된다. 그리고 오늘이는 커서 엄마 아빠를 찾아 나서고. 고생 끝에 원천강에서 부모를 만나게 된다. 부모가 사는 집 담장에는 문이 네 개가 있는데, 문 너머에는 각각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 오늘이의 부모는 인간세계의 만물이 번성하도록 사계절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만나고 이승으로 돌아온 오늘이는 나중에 신녀가 되어 시간의 흐름과 사계절을 인간세계에 전하는 일을 하게 된다.      


오늘이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는 자연스레 페르세포네의 신화가 떠올랐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대지를 1년 내내 풍요롭게 가꾸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딸 페르세포네가 갑자기 사라진다. 정신없이 딸을 찾던 데메테르는 저승을 관장하는 하데스가 자신의 딸을 납치해 간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간신히 딸을 돌려받는데,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에게 석류를 먹인다. 지하 세계의 음식을 먹으면 지하 세계 사람이 되는 법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페르세포네는 1년의 반은 하데스와 살고, 나머지 반은 엄마 데메테르와 지내게 된다. 데메테르는 딸과 있는 동안에는 대지를 돌보지만 딸이 하데스에게 가 있는 동안에는 슬픔에 잠겨 대지를 돌보지 않아 세상은 겨울이 된다고 한다.     


페르세포네의 신화는 사계절이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고, 오늘이의 이야기는 사계절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라 둘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계절이 어떻게 순환하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설명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재미있는 점은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에게 한눈에 반해서 저승세계로 끌고 가고, 오늘이의 부모는 서로 다른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로 오늘이를 낳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쪽은 엄마가 딸을 한쪽은 딸이 부모를 찾아 나선다. 이렇게 두 이야기는 남녀의 사랑과 부모자식 간의 사랑으로 사뭇 느낌이 다르다. 한쪽은 남녀의 사랑이 납치극이 되는 끔찍한 상황이 연출된다면, 한쪽은 고아가 된 아이가 부모를 찾는 눈물겨운 이야기로 연출된다. 한쪽은 욕심이 화를 부르고 다른 한쪽은 천륜이 고난을 부른다. 한쪽은 영화 <Taken>이고, 이쪽은 <엄마 찾아 삼만리>다.

도시국가의 신화에서 신들은 복잡한 가계로 엮여 있다. 부부가 되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혈족이다. 반면 우리나라 신화 세계에서는 평범한 인간이 죽음을 무릅쓰는 고난 끝에 신의 반열에 올라가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지만 우리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신이 된다는 말은 결국 현실 세계의 눈으로 보면 죽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달픈 삶의 끝에 현실 세계에서 죽은 우리 주인공들은 신화 속에서 비로소 신(神)이 되어 되살아 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신화는 애달프고 처연한 느낌으로 우리 마음에 아련하게 남는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유독 고난을 이겨내는 인물로 그려야만 했을까?

"누구세요. 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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