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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Feb 21. 2023

튀르키예 이스탄불 여행

친절한 마음

여행 바로 전날이었다. 딸은 여행을 취소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딸이 말했다. 너무 늦게 이런 말 해서 아빠도 혼란스럽겠지만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래요. 아빠가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티르키에의 지진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딸의 제안에 짜증이 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이 내키지 않은 건 딸뿐이 아니었다. 아내도 나도 미안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우리 여행지인 이스탄불이 비록 지진 현장에서 먼 곳이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너무 임박한 탓에 취소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대로 여행을 강행했다. 대신 티르키에에 보낼 구호 물품을 한 박스 챙겨서 차에 실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새벽인 탓에 우리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구호 물품을 모으는 업체에 우리가 모은 구호 물품을 전달하기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탄불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유럽인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동양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서양으로 보이는 절묘한 곳이다. 10여 년 전에 갔을 때는 중국인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우리가 묵은 호텔도 그렇고 어떤 유명 관광지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은 그리 많아 보지 않았다. 흑해와 지중해로 이어지는 마르마라 해 사이에 있는 이스탄불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어디를 가나 갈매기를 볼 수 있었다. 어떤 바자르에 가든 상인들은 나를 향해 줄곧 중국어로 외쳤고, 식당 종업원은 자기도 중국에서 일했다며 중국말로 나를 불러 세웠다. 우리 가족은 여행 기간 내내 조용히 이스탄불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소금 뿌리기 장인 누스렛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이스탄불, 소금, 갈매기, 나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서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업체를 찾았을 때 주차를 돕는 직원분은 우리 차를 가로막으며 미안한 듯 말했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이해가 쉬우시려나. 그래요 다 말씀드릴게요. 여기 창고에서 구호 물품을 받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더 이상 야적할 곳이 없을 만큼 물품이 많이 쌓였어요. 그래서 다른 창고를 알아보는 중인데, 여기 있는 물품을 그쪽으로 옮겨야 여기서 또 받을 수 있어서 어떡하나 고민 중입니다. 그러니 그 물품은 일단 집으로 다시 가져가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만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친절한 마음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분은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고. 친절한 마음이 고맙다고. 나는 그분의 다정한 설명에 마음이 놓이는 한편으로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다녀온 마음을 변명할 길이 없어져서 난처했다.

그래도 묘하게 주차요원을 하시던 분의 선량한 말이 가슴에 남았다. 여행보다 그 말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따뜻한 마음. 고맙습니다. 친절한 마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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