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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Mar 07. 2023

사주명리, 기독교, 불교 그리고 이론 물리학

검은 바다를 건너는 뱃사공

검은 바다를 건너는 뱃사공

검은 바다를 건너는 뱃사공

동해 밤바다에서 인생 첫 차박을 한다. 차에 앉아 컴컴한 바다를 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원자로 이루어진 이 우주에 인간의 의식이란 저 부서지는 포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자의식마저도 금세 사그라질 헛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기분. 그래,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렇게 아는 척하는 건 내가 물리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포석을 깔기 위해서다. 수학은 모른다. 하지만 요새 읽는 책도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오브 타임이다. 아마 "나 물리학 좋아해요." 하면 힙하다고 생각하는 허영이 있나 보다.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갑자기 이론 물리학 이야기를 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아내다. 아내는 사주명리를 공부한다. 그녀는 우등생답게 자신이 공부한 걸 항상 내게 이야기한다. "알고 보니 공망살이라는 게 전통적인 사주명리에서 볼 때에는 **라는 의미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은 좀 달라. 그리고 아예 그게 사주에 막 세 개씩 몰려 있으면 좋은 점도 있는데 왜 그러냐 하면." 그녀는 거의 모든 세상사와 사람을 사주 명리와 엮어 이야기한다. 이렇게 그녀는 나를 빈 노트 삼아 노트 정리하듯 계속 내게 말한다. 때문에 슬쩍 화장실을 간다거나, 자연스럽게 "딸은?" 하며 화제를 돌리지 않는다면 그녀는 장담컨대 내가 잠드는 순간까지 말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최신 과학의 발견을 이야기하면 “내 얘기 듣기 싫으면 싫다고 해.” 하며 화를 낸다. 그러니까 내가 <이론 물리학>을 좋아한다는 걸 그녀가 좀 알았으면 좋겠다.     

또 한 사람은 교회를 다니는 사촌 동생이다. 그녀는 얘기를 하는 중 조금의 빈틈. 이를테면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하하하 정말?"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순간 "그게 다 성경에 나온다니까. 사람들이 거기 다 쓰여있는데 알고도 무시해." 하며 성경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국 한자에 드러난 하나님의 증거 하심에 이르면 도무지 정신이 어지러워진다. 난 불교 믿는다고 해도 전혀 효과가 없다. 그래서 난 성경보다는 <종의 기원>이나 <코스모스>를 더 믿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머지 한 사람은 불교대학을 다니는 대학 친구다. 그녀도 내게 자기가 배운 것들을 즐겨 말한다. 어쩌면 그녀는 나와 다시 한번 대학 동기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난 <이론 물리학>과에 갈 거라네. 친구!

     

나도 사실은 안다. 다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나아지기를 바라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 쓰는 거란 걸. 나도 삶이 궁금하다. 내게 벌어지는 일의 원인이 궁금하고, 그 까닭을 찾아내면 좀 더 나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치기도 한다. 나도 삶에 조그마한 의미라도 깃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어마어마한 저항에 부딪힌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다음엔 어떤 대목이 나와야 할지. 도무지 모를 상황에 수없이 직면하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해도 수시로 멱살 잡히듯 해답을 못 찾아 목이 졸린다. 예전에는 이렇게 데드엔드에 떨어지면 간혹 작법서를 읽곤 했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읽은 작법서는 금방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흥분과 기대를 갖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마취제처럼 이 약발은 금세 떨어지고 다시 나를 데드엔드로 되돌려 놓는다. 


밤바다를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캄캄한 밤바다에 나룻배를 타고 육지를 찾아 나서는 뱃사공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열에 예닐곱은 바다에 빠져 “도대체 그래서! 삶이 뭐냐고!” 외치며 인생을 마감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운이 좋다면 삶의 의미도 찾고 육지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사주팔자를 파악하고, 부처의 계율을 따르는 덕에 영험하게도 그 모든 것을 이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감사하며 숭배하고 찬양하고 애지중지해도 좋을 것이다. 이론 물리학을 좋아하는 나는 아인슈타인이나 보어가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영험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경배하긴 하지만 그들을 믿고 그들의 이론을 내 삶의 '작법서' 삼아 따르진 않는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이렇게 말했다.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캄캄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래 그들이 나보다 훨씬 행복할지 몰라.

낙산의 아름다운 밤바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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