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수 년간 아침마다 아내와 딸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 정리를 다 한 다음 내 일을 시작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집안일을 한바탕 해치우고 나면 딸이 초등학교 땐 10시 반이 넘었고, 지금은 9시 반이 넘는다. 다행히 저녁에는 아내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딸을 봤기 때문에 내 퇴근은 좀 늦어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지내 온 게 십수 년이다.
이런 사정의 문제는 무조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딸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을 해야 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무리를? 하지 않게 됐다. 무엇보다 딸을 챙기는 게 제1 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의 효율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집중도도 현격히 낮아졌다. 내가 이 루틴에 저항하고 몸부림친 행동은 혼술이었다. 답답한 심정을 그렇게 풀었던 거 같다. 그래서 처음엔 혼자 술 마시다 취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혼잣말도 엄청 많이 했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 조용하게 술을 마시고 있지만... 이렇게 지내면서 내 세상의 범위도 참 좁아진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바뀌어서 아침에 딸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게 됐다. 그래서 몇 주간 아침 먹고 7시에 집을 나섰다. 이렇게 하니 정말 하루가 길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몸은 예전처럼 11시가 넘어야 움직여졌다. 작업을 그때부터 하는 거다. 그전엔 졸기도 하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서둘러 가서 일찍 도착하고서는 그냥 노는 거다. 보통 같으면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치우고 청소를 했겠지.
그렇게 몇 주를 하고 보니, 나는 과연 야행성이었다. 옛날부터 나는 야행성이었다. 확실히. 그 편이 내 작업 능률에는 좋다.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못 만들어 왔는데 집중을 더 해야 한다. 몇 년은 그렇게 해야 일이 제 궤도에 오르리라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러자니 아쉬운 점은, 딸이랑 같이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거다. 내가 주장해서 지금껏 우리는 늘 아침을 같이 먹었다. 그런데 만일 내가 다시 야행성을 회복하려 하면 아침 먹는 시간에야 자게 될 테니 예전만큼 딸을 못 보게 된다. 나는 그게 속상하다. 일에 매달리는 아비들은 종종 아이가 성년이 되면 집안에서 겉돌게 되곤 한다. 외톨이가 되기 쉽다. 딸이 보고 싶은 건 분명하고, 작업의 능률은 확실히 밤이 좋고... 그러나 야행성을 시도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두려운 점은.과연 내가 집중력을 높인다고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오겠느냐이다. 지난 시간 반복된 실패는 내게 가능성도 자존감도 모조리 빼앗아 갔다. 야행성이 되고 딸도못 보면서 결국 실패할까 두렵다.쫄아서 난 그냥 주욱 아침을 먹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