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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Mar 12. 2023

과연 나는 야행성을 다시 복구할 수 있을까?

nocturnal 새로운 변화

지난 십수 년간 아침마다 아내와 딸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 정리를 다 한 다음 내 일을 시작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집안일을 한바탕 해치우고 나면 딸이 초등학교 땐 10시 반이 넘었고, 지금은 9시 반이 넘는다. 다행히 저녁에는 아내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딸을 봤기 때문에 내 퇴근은 좀 늦어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지내 온 게 십수 년이다.

이런 사정의 문제는 무조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딸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을 해야 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무리를? 하지 않게 됐다. 무엇보다 딸을 챙기는 게 제1 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의 효율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집중도도 현격히 낮아졌다. 내가 이 루틴에 저항하고 몸부림친 행동은 혼술이었다. 답답한 심정을 그렇게 풀었던 거 같다. 그래서 처음엔 혼자 술 마시다 취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혼잣말도 엄청 많이 했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 조용하게 술을 마시고 있지만... 이렇게 지내면서 내 세상의 범위도 참 좁아진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바뀌어서 아침에 딸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게 됐다. 그래서 몇 주간 아침 먹고 7시에 집을 나섰다. 이렇게 하니 정말 하루가 길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몸은 예전처럼 11시가 넘어야 움직여졌. 작업을 그때부터 하는 거다. 그전엔 졸기도 하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서둘러 가서 일찍 도착하고서는 그냥 는 거다. 보통 같으면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치우고 청소를 했겠지.

그렇게 몇 주를 하고 보니, 나는 과연 야행성이었다. 옛날부터 나는 야행성이었다. 확실히. 그 편이 내 작업 능률에는 좋다.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못 만들어 왔는데 집중을 더 해야 한다. 몇 년은 그렇게 해야 일이 제 궤도에 오르리라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러자니 아쉬운 점은, 딸이랑 같이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거다. 내가 주장해서 지금껏 우리는 늘 아침을 같이 먹었다. 그런만일 내가 다시 야행성을 회복하려 하면 아침 먹는 시간에야 자게 될 테니 예전만큼 을 못 보게 된다. 나는 그게 속상하다. 일에 매달리는 아비들은 종종 아이가 성년이 되면 집안에서 겉돌게 되곤 한다. 외톨이가 되기 쉽다. 딸이 보고 싶은 건 분명하고, 작업의 능률은 확실히 밤이 좋고... 그러나 야행성을 시도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두려운 점은. 과연 내가 집중력을 높인다고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오겠느냐이다. 지난 시간 반복된 실패는 내게 가능성도 자존감도 모조리 빼앗아 갔다. 야행성이 되고 딸 못 보면서 결국 실패할까 두렵다. 쫄아서 난 그냥 주욱 아침을 먹을 거 같다.

유감없이 발휘되는 쫄보 기질. 한 번 쫄보는 주욱- 쫄보다. 그거 어디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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