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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Apr 15. 2023

이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작품 모니터 받기

살아온 게 왜 이따윌까?

모니터가 걱정이다. 누군가 시간을 내서 기꺼이 내 글을 봐주고, 문제를 지적해 줄 사람이 이제 거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최근에 본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오브 타임>에서 저자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값진 조언을 해 준 여러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들은 나의 원고를 철저하게, 때로는 두 번 이상 읽으면서 잘못된 부분과 개선할 부분을 지적해 주었고, 그 덕분에 원고 질이 몰라보게 개선되었다.”

생명진화와 물리학의 최신 이론을 모조리 설명하는 이 책에는 그 흔한 계산식이 하나 없다! 진짜 너무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책에는 복잡한 수식들이 조금 나와 줘야 읽는 내 허영도 채워지고, 이해 못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자위도 하는데... 망했다. 아무튼 저자는 이 글에서 특별히 고마운 사람 12명, 그리고 특별한 부분에 조언해 준 23명의 명단을 나열한다. (이들 중에는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도 있다!) 이 책은 자그마치 533쪽이나 되는 책이다. 이 책을 성심성의껏 두 번 이상 읽고 또 고민해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는 건 정말 무지막지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난 장담하는데 두 번은 못 읽는다.


모니터를 주고, 받는 일은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처음 쓴 원고는 언제나 늘 후진 원고이기 때문이다. 처음 원고를 마감하는 작가의 마음 상태는 언제나 이성은 날아가고 뜨거운 열정만 넘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작가는 이 후진 원고를 마구마구 사랑하는 건방진 양아치 상태가 된다. 하지만 정작 원고는 그야말로 덕지덕지, 오리무중, 오락가락, 거지 발 싸게 같은 상태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홍두깨로 머리통에 피 분수가 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 손으로 피 분수를 보는 건 불가능하니 모니터가 필요하다. 그나마 나는 이제 오래되어(?) 내 원고가 그렇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모니터를 받게 되면 흥이 넘쳐 춤추는데 찬물을 뒤집어쓰고, 뺨을 맞는 기분이다. 그렇게 첫 모니터는 늘 아프다.

반면 모니터를 해주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듯, 엉망진창 대본에 화가 난다. 쌍욕을 한 바구니 해주고 싶은 마음이 된다. 하지만 작가가 상처받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주저하며 칭찬도 조금 토핑처럼 얹고, 거짓말도 섞고, 빙빙 돌려 말하고 아무튼 무진장 애를 쓰게 된다. 그래서 작가도 상대의 성격이 직설적인지 아닌지, 작품의 취향은 어느 쪽인지 고려하게 된다. 멜로만 보는 사람에게 SF 서사가 어떤지 묻는 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철저하게, 두 번 이상 읽고 모니터를 하는데 제 작품에 취한 눈먼 작가가 화라도 내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어 진다. 그러니 모니터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불편하고, 눈치도 많이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모니터를 잘하려면 작가는 자신의 흉한 밑바닥을 보여줄 용기가 필요하고, 모니터를 하는 사람은 작가에게 이상한 것, 납득가지 않는 것들을 거리낌 없이 얘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니터가 영웅호걸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냥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라는 뜻이다. 지난 20년간 나는 모니터 부족에 늘 시달렸다. 처음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모니터를 부탁했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영화화되지 않고 번번이 엎어졌고 그럴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체면도 안 서고 민망해진 나는 결국 더 이상 모니터를 부탁하지 않게 됐다. 대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그 고생을 떠안게 됐고, 그래서 또 하나둘 떠나게 된 것 같다. 고맙고 또 미안하다.

         

좋은 글에는 좋은 모니터가 필수다. 브라이언 그린의 책은 모니터 해 준 사람만 35명이다, 여기에 출판사의 여러 스태프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부럽다. 그렇다. 원래는 후졌을 그의 글이 이토록 훌륭하게 된 것도 모두 <35명 + α> 사람들이 “잘못된 부분과 개선할 부분을 지적해” 줘서 “원고의 질이 몰라보게 개선” 됐기 때문이다. 모니터 해 줄 사람이 많은 작가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35명 + α> 나도 갖고 싶다! 아니, 일반 관객의 눈으로 정말 잘 봐주는 사람을 하나라도 갖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 나는 지난달에 마감을 할 때도 고민이 많았다. 모니터해 줄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제 모니터도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모니터로 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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