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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Apr 10. 2023

한국영화의 위기. 3> 더이상 영화에는 돈냄새가 안난다

마지막 이야기 STOP! 영화 말고, 거기 돈 냄새나는 너 일루 와봐

<이건 영화산업을 돈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는 내 생각이다. 앞에서 돈이 영화 자체를 어떻게 바꿨는지 살펴봤다. 이제 금융자본들이 돈 냄새를 맡고 어디로 가고 있나 살펴보겠다.>

  

사실 지금의 영화관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대기업들의 극장이다. 이 대기업들은 투자한 영화에서 이익이 나면 투자 이익으로 한번 가져가고, 배급하면서 두 번 가져가고, 극장에 걸면서 세 번 가져간다. 몇 년을 개발에 투자했든 개발 당사자는 별로 가져가는 게 없다. 이익이라는 케이크에서 이렇게 먼저 커다란 세 덩어리를 가져가면 정작 제작한 사람들 앞에는 부스러기밖에 안 남는다. 그리고 때로는 부스러기 좀 더 먹자고 같이 일한 사람끼리 싸움질을 하기도 한다. 뼈 한 조각을 놓고 시장판에서 싸우는 개들처럼. 돈이 있는 곳에 돈이 모인다. 그리고 돈이 모인 곳에 사람도 모인다. 아무리 큰 케이크를 구워도 먹는 게 부스러기뿐이면 있던 사람은 상을 엎어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그 꼴을 뒤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이 판에 들어오지 않는다. 늘 가던 식당 가듯 나 같은 미련퉁이나 영화판에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오면 관객도 피해자고, 영화판의 구성원도 다 피해자 같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돈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거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금융자본은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이익을 내는 방식으로 영화를 바꿔왔다. 누가 뭐래도 금융자본은 영화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고, 한국영화 시장을 키웠다.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한미간의 금리차로 인해 돈이 움직이는 상황을 앞에서 이야기했었다. 금융자본은 그런 것이다. 돈이 되는 곳에 모였다가 다시 돈이 되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금융자본은 이제 돈이 되는 드라마로 신속하게 옮겨 타고 있다. 대형 투자사들도 이미 드라마에 투자한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고 나섰다. 돈이 빠져나가고 나면 영화산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50억은 어디서 구해서 영화를 만드나? 만들어지는 영화가 없는데 과연 극장은 살아남을 것인가? 정말 영화산업은 위기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영화를 살리고, 가꾸고, 경쟁력을 재고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관련사업 종사자들이 힘을 합치고 머리를 맞대서 제도를 고치고 개혁해야 하는 걸까?  


왜?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늘 희망에 베팅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가 이 모양이 된 게 어떤 집단의 탓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고,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그렇게 지나온 것이다. 물론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영화는 누군가에 의해 계속될 것이다.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도 나올 거다. 그리고 한국 영화 부활! 이러면서 한동안 요란을 떨기도 할 거다. 물론 지금도 짱짱하게 현업에서 뛰는 제작사들이 있다. 그렇지만 조금씩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가라앉고 잊히고 사라져 갈 것이다. 극장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스타벅스만큼 많던 극장은 처갓집 양념통닭집만큼만 남을 것이다. 입장료가 비싸졌다고 화를 내지만 그 또한 우린 금방 익숙해질 거다. 우리가 영화를 사랑해야 할 의무는 눈곱만큼도 없다. 맛없는 식당이, 투자가 들어올 때 그 돈으로 허튼짓만 한 프랜차이즈가 망하는 걸 막아 줄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얻은 교훈으로 영화 관계자들이 변화하고 그래서 입법과 행정 정책을 힘을 합쳐 손보고, 마침내 그런 노력이 모여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꾸준히 계속 좋은 한국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관객들도 다시 한국영화에 신뢰를 가지고 극장으로 돌아오고... 얼씨구~ 지랄도 풍년이구나.

솔직히, 이런 게 되는 나라였으면 우리나라는 진작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돼서 달로 수학여행을 다녔을 거다.  이제는 잊혀진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홍콩의 영화가 뭐 그리 큰 잘못이 있었겠나. 그렇게 한 시절이 가는 거다.


돈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이윤이 나오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다. 언제나 꼼꼼하고 부지런하다. 지금의 문화산업에서 많은 금융자본은 최종적으로 IP로 향하고 있다. (Intellectual Property)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드라마 쪽도 정말 드라마틱하게 돈이 모이는 중이다. 원래 이 동네에 짱 먹던 건 공중파였다. 그런데 각종 케이블 방송국과 OTT가 등장하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그러자 공중파는 드라마 투자비는 낮추면서 효과를 높이려고 협찬과 PPL을 남발한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케이블 등으로 채널을 돌린다. 케이블이 성공을 쌓아가는 사이 공중파가 가졌던 드라마 왕국의 명성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 무주공산에 드라마 제작사들이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때마침 드라마는 웹툰을 가져오면서 큰 재미를 본다. 이렇게 웹툰 원작이 드라마가 되는 길이 뚫리자 이번엔 웹툰이 난리가 났다. 웹툰에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웹툰에 들어간 금융자본도 통계로 사고하고 과학적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이렇게 하기로 한다. 실패 가능성이 많은 웹툰 개발보다는 이미 성공한 웹소설을 가져다 웹툰 그리는 사람을 고용해서 만드는 거다. 영화판에서도 발휘했던 바로 그 실력이다. 역시 금융자본은 현명하다. 이제 웹툰은 실패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드라마 쪽에 들어온 금융자본도 이걸 모를 리 없다. 이제 웹툰 1-2 화만 보고 당장 달려가 계약해도 늦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다들 IP로 마구 달려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걸 인력으로 막을  수 없다. 은행에 가서 이자 높다고 대출금 못 내겠다며 땡깡 놔봐야 소용없다.


다시 말 하지만 금융자본은 쉬지 않는다.  쉼 없이 IP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드라마, 웹툰 소비자들과 이 업종 종사자들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직업을 잃는 사람도 생기고, 상처 입고 창작활동을 그만두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본의는 아니다. 금융자본이 원래 애는 착하다. 그냥, 피도 살도 없이 차가운 친구라 그렇다. 쌀을 빌려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통계와 과학적 사고 아래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숫자로 치환했기 때문에 조금 잔인해 보일 뿐이다.    

  

가끔 나는 영화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곤 한다. 그 생각을 하다 보면 그 끝에 그리스의 음유시인들이 떠오른다. 일을 마친 시민들이 저녁 모닥불을 피운다. 음유시인은 사람들 앞에서 때로는 감미롭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영웅들의 사랑과 전쟁 그리고 모험을 이야기한다. 캄캄한 밤하늘과 조용한 대기는 스크린처럼 영웅들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한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 육체의 범위에 한정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에 대한 설렘은 우리들 육체 범위를 뛰어넘고자 한다. 이야기는 바로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그래서 언제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나는 영화를 일종의 거대한 장치산업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극장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거대한 화면과 화려한 음향으로 늘 설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본 수많은 영화는 이야기 그 이상이었다. <죠스> <대부> <허공 위의 질주> <스타워즈> <시네마천국> <박하사탕> <삼포 가는 길>... 손으로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화가 내 인생에 있었다. 이 영화들은 지금 우리가 보는 영화들과 좀 달랐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은 오락이기 이전에 인생에 더 가까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아우라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다른 예술 장르가 그랬듯 영화도 다른 무엇인가에 최고의 자리를 내주고 물러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뭐카노 movie forever!”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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