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len rabbit Apr 07. 2023

한국영화의 위기. 2> 오늘 날 영화는 어떻게 변했나

<이건 영화산업을 돈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는 내 생각이다. 앞에서는 돈이 영화판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설명해 봤다. 이제 돈이 영화 자체를 어떻게 바꿨는지 살펴볼 차례다>

   

돈은 통계로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판단한다. 다시 90년대 말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한국영화는 엄청나게 활력이 있었다. 지금 유명짜한 감독들은 거의 다 이때 등장했다. 한국영화는 너무나 풍부하고 다양했고 힘이 넘쳤다. 그리고 이미 상당히 완숙해 있었다. 갑자기 이런 상황이 닥치자 영화판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관객도 앞으로 한국영화는 계속 이렇게 발전하리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디워>도 그런 소산이었다. 이제 우리도 <터미네이터>나 <쥐라기공원> 같은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모두 믿었던 거다. 게다가 때마침 <디워>에는 <쥐라기공원>처럼 공룡 같은 것도 나오고 <터미네이터>처럼 총질도 하고 백인도 많이 나오니까. 이거야! 드디어 그게 왔어! 하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다.

어쨌든 처음 돈이 영화판에 들어올 때 돈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확실히 한국영화가 돈이 될 수 있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투자를 계획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조폭 영화'에 투자한다. 그때는 정말 신물이 날 정도로 조폭영화들이 나왔다. 심지어 어떤 영화 포스터에는 “그래 또 조폭이다”라고 미리 선빵을 때릴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들은 돈이 됐다! 그러자 금융자본은 다음을 생각했다. 난립한 후진적 소형 영화관들 옆에 세련되고 멀티 한 프랜차이즈 영화관들을 세웠다. 그리고 이 영화관에 틀 영화를 입도선매하기 위해서 제작사에 투자를 한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제품 공급을 가능하게 한 거다. 이 두 가지는 결국 개별 영화관의 몰락과 제작사의 줄서기라는 결론을 가져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영화가 힘이 있었다. 늘 새로운 영화가 등장하고, 화제가 만발했다. 때문에 입도선매로 투자를 받은 어떤 제작사는 한 해에 십 여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 덩치도 커졌다. 그 와중에 또 어떤 영화는 천만을 찍고, 어떤 감독은 하는 영화마다 계속 흥행을 하자 다시 돈은 생각했다. 제작사를 제외시키고 흥행 감독과 직접 작품을 제작하기로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천만 영화가 되기 위한 조건을 과학적으로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즈음이 되자 영화판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이렇게 말했었다.

“할리우드 흥행영화 A랑 B를 섞어, 그다음에 한국식으로 약간 매콤 눈물 양념을 해. 그렇게 하면 영화 들어갈 수 있어.”

영화계가 활력이 있었던 건 오리지널리티 때문이었잖아. 오 마이갓. 이건 악몽일 거야. 그리고 꿈은 현실이 되었다. 바로 그런 시나리오들이 정말 영화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흥행도 됐다는 것. 이제 뻔하다는 건 익숙하다는 것으로 포장됐다. 식상하다고 저항하는 사람을 원산폭격시키며 복창도 시켰다.

“클리셰는 옳다!”

그렇게 의식의 대전환기를 맞아 정말 원산폭격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영화 <해운대>가 다시 천만을 이룩한다. 이렇게 돈은 자신의 생각을 증명했다. 그리고 외쳤다.

“나 빼고 다 대가리 박아!”

이즈음부터 피디들은 시나리오를 들고 방문판매를 시작했고, 조금 뒤에 금융자본은 어느 흥행감독에게 ‘왕홀’을 쥐어 주었다. 그는 클리셰를 비틀어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서 클리셰의 성공을 증거 하는 인물이 됐다. 그즈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영화 하려면 시나리오 들고 저 ‘왕홀’로 가야 해.”

왕홀의 치세 기간 동안 영화는 점점 더 클리셰 덩어리가 됐고, 뻔해졌고, 예전의 생동감을 잃어갔다. 관객들 사이에서 한국영화는 뻔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마는 불사한다. 그리고 영화관은 한 해에 2억 2500만 명이 관람하는 대성황을 이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코로나다. 사람들이 영화관을 갈 수 없게 됐다. 갑자기 모든 영화관이 파리를 날리게 됐다. 자그마치 거의 3년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코로나가 막 시작할 때였는지 직전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떤 유명한 감독님께서 신작 제작을 발표했을 때였다. 그러자 인터넷의 현자들이 이 영화의 예상되는 줄거리를 만들어서 배우들의 클리셰한 연기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제작 전에 뜬 이 스포(?) 때문에 제작이 무산되고 만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꽤 많은 한국 영화들이 이런 놀림을 당했고, 그럼에도 클리셰 덩어리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었다. 예전에 명성이 자자한 맛집의 맛이 이상해졌어도 그저 습관처럼 식당에 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 식당이 오랫동안 문을 닫는 통에 다른 식당에 가본 뒤로는 그 식당이 다시 열어도 가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관객의 돈도 돈이고, 돈은 언제나 현명하다. 한국영화는 통계적으로 뻔한 스토리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마침 극장이 문을 열지 않았고, 그사이 다른 볼거리에 눈을 떠버린 거다. 결국 한국영화는 맛없는 가게였다. 싼값에 갔던 거다. 이런 상황인데 극장이 입장료를 올린다니 더 미운 거다. 과학적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거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나도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클리셰 듬뿍인 영화를 쓰고 싶었다. 정말이다. 돈을 주고 쓰라고 하면 기꺼이 쓸 태세였다. 하지만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때 소위 <A+B+매콤고추장>이라는 과학적 판단에 부합하는 대박 영화를 쓴 적이 없기 때문에 기회가 오지 않았다. 전처럼 어느 정도 작가를 케어해 주는 제작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늘 혼자 작품을 만들어서 행상을 해야 했다. 그때 내게 그까짓 대박 날 블록버스터 영화 시나리오가 뭐 어렵다고 얼릉 하나 써보라고 격려해 준 사람이 많다. 참 고마웠다.

한국영화는 상업영화를 기준으로 한 해 60편 정도 만들어진다. 그중 블록버스터 급은 5-6편 정도다. 작가에게도 매몰 비용이 있다. 채택이 되지 않으면 작업한 시간과 노력은 다 불살라진다. 그러니 일 년에 5-6편 만들어지는 대작 영화를 쓰자고 몇 달, 혹은 몇 년을 쏟아부을 수 없다. 확률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머지 50개 영화에 배팅한다. 중급이나 저예산 영화를 노리고 시나리오를 쓰는 거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 몇 편은 지난 세월 동안 영화판에서 유령처럼 떠돌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시나리오 작가의 페이는 2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20년 전 가격이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와 침체기 그리고 폭망기를 관통하며 작가들은 모두 가운데 손가락만 빨았다. 게다가 지금은 영화 제작을 고려하지 않는 투자사도 많아졌다. 시나리오를 써도 사줄 데가 없어진 것이다. 사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암중모색 중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앞날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에 투자되던 그 돈들은 다 어디로 갔나. 다음엔 그 얘길 해보자.


To be continue!

커밍 쑤운!


작가의 이전글 한국영화의 위기를 말하다. 1> 영화 제작 환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