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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Apr 17. 2023

마침내 사랑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고 말았다.

가슴 깊이 파묻고 만 사랑

다들 인생에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가슴속 깊은 비밀이 드러나거나, 심지어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나의 어떤 모습을 직면하는 그런 순간. 지금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차량들. 교량의 연결부위가 꿀렁꿀렁- 요란한 소리를 내던 것이며, 파란 하늘과 그리고 상냥하던 포니테일까지... 그 순간 가슴속 깊숙이 감춰뒀던 어떤 마음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나는 이걸 아무에게도 평생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게 됐다. 


나는 강원도를 향해 맹렬한 속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성남 근처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다가 도로 위에 커다란 쇳덩어리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둘러 핸들을 꺾어 앞바퀴는 피했지만, 뒷바퀴는 크게 꿀렁이며 쇳조각을 타고 넘었다. 하지만 차는 별다른 경고표시도 없이 잘 달렸다. 나는 별생각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마침내 영동 고속도로로 올라가 두 번째 터널을 맹렬하게 통과하고 있을 때였다.  

쾅!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차 뒤쪽이 흔들렸고 나는 차를 조정할 수 없었다. 1차로를 달리던 차가 순식간에 2차선으로 휙 돌았다! 때마침 달려오는 차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옆에 차가 있었다면 큰 사고가 났을 거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한 친구는 이 얘기를 했을 때 요즘엔 그래도 안 죽어. 차가 좋아서.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왠지 기분이 상했다. 심통이 났다. 희한한 감정이다. 아니, 내 말을 증명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어야 했는데! 이런 건가? 사고 안 난 게 억울한 건가? 아무튼 나는 그때 터널에서 속력을 줄이고 천천히 끝 차선으로 붙었다. 터널 안에는 갓길이 없었다. 그 순간에도 차는 심하게 요동쳤고 핸들은 조정이 쉽지 않았다. 간신히 터널을 빠져나오자 교량이 보였다. 교량에는 마침 갓길이 있었고, 나는 천천히 갓길에 차를 댔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도로는 오른쪽으로 조금 굽어 있었고, 내가 선 곳은 갓길이어도 상당한 위협을 느꼈다. 빠르게 터널을 빠져나오는 차량에서는 내 차가 바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차에서 내려 보니 오른쪽 뒷바퀴의 타이어가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있었다. 난 펑크가 난 줄도 모르고 전속력으로 20킬로를 달려온 것이었다. 나는 차로 돌아가 레커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차에 앉아 있었다. 바로 옆으로 차들은 맹렬한 속력으로 지나갔다. 교량 연결부위에서 꿀렁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교량은 계속 울렁거렸다. 이러다가 달려오는 차에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나는 트렁크에 있는 사고 표시 삼각대를 떠올리고 차에서 내렸다. 처음 써보는 탓에 낑낑거리며 삼각대를 펴고 있을 때였다. 고속도로 관리공단의 차 한 대가 내 뒤에 섰다. 내가 돌아보자 조수석에서 한 중년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사내는 포니테일을 질끈 묶고 노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차가 펑크가 나서요." 

"보험사에 연락은 하셨나요?" 

"네. 레커가 10분 정도 뒤에 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맞았다. 포니테일이 선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럼 안전하게 차에 계세요. 저희가 뒤에서 경고등 켜 놓고 레커 올 때까지 봐드리겠습니다." 

그의 미소에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당황스러웠다. 이 감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차에 타며 생각했다. 터널에서 사고를 겪은 뒤부터 사실 나는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을 것이다. 나는 처음 당한 일에 경황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와 함께 있어준다니! 나는 포니테일의 말에 가슴이 뛰었다. 이렇게 뛰는 가슴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나는 포니테일에게 사랑을 느꼈다! 나는 레커에 실려가며 다시 한번 포니테일을 보았다. 그에게 뛰는 가슴을 붙잡고 감사를 전했다. 그가 다시 미소로 화답했다. 

"네. 안전한 여행 되세요."

하마터면 나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물을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사람은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비밀은 평생 죽을 때까지 입 밖으로 내놓지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가슴 깊이 파묻은 채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포니테일 사내에 대한 사랑은 죽을 때까지 입 밖으로 내놓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우주에서는 내가 비밀을 털어놓고 포니테일 사내와 격렬한 키스를(우웩-)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전에 터널에서 차량 추돌과 전복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편이 나을지도) 어쨌든 나는 죽을 뻔했지만 살았고, 사랑으로 가슴이 설렜으나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세상에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로 가슴속 깊이 파묻어 놓을 거다. 가슴에 노오란 얼룩이 남았다. 

내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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