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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Aug 20. 2023

15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니체는 "인간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느니 차라리 무(無)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간혹 혼자 있는 노숙인들을 보면 그중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들도 혼자 있을 때는 찢어진 신문 쪼가리라도 읽고 있다. 정말 사람은 심심한 걸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니체의 "무(無)"는 다른 뜻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슨은 약 400명의 피실험자에게 텅 빈 공간으로 들어가 15분 동안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요청했다. 그러는 동안 피실험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어떤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만 하면 되었고 그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다만 실험 도중에 일어나 움직이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했다. 

(중략) 대략 10명 중 9명이 정신적 불안증으로 무척 괴로워했다. (중략)

여기서 윌슨은 밀그램이 진행했던 실험을 떠올렸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시키면 이를 받아들이더라는 권위에 관한 실험으로 유명하다 -나의 첨언-) 그리고 다음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다시 피실험자들을 모아 어느 공간에 앉아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략)

피실험자가 조그마한 버튼을 눌러 스스로에게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중략)

평균치를 보면, 15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에게 7번 이상 전기충격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텅 빈 느낌을 거의 참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얘기를 다른 작가에게 해 주고 같이 깔깔 웃었다. 왜 15분도 못 견뎌서 자기한테 전기충격을 해? 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로 있는 게 대게 일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이 책은 정말 신기하다. 분명 뇌과학 책인데 어떤 실험을 증명하고 거기서 어떤 것을 발견하는 식의 내용이 아니다. 이 책은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 뇌는 과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을 밝히려 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니체, 부처, 선불교와 쇼펜하우어 등 형이상학과 철학을 소환한다.

선불교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한다. 진리와 존재에 대한 부처의 정의조차 부정하는 무(無)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의 역사이며 세상은 "눈물의 골짜기"라면서 여기서 벗어나려면 무(無)를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현대 뇌과학은 생각하고 의지를 발휘하는 뇌(해마와 두정엽 등)가 어떤 특정 조건에서 "텅 빈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저자는 이것이 선불교나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무(無)에 이르는 상태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러면서 광기에 휩싸인 뒤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된 니체, 평생을 괴롭히던 불면증에 항복하면서 도리어 황홀경을 느꼈다는 철학자 에밀 시오랑도 모두 이 "텅 빈 상태"를 경험했으리라 추측한다.

이어 이 책은 최신 뇌과학이 밝혀낸 뇌의 작용에서 "텅 빈 상태"를 찾아내고, 이 텅 빈 상태가 만들어내는 효과를 설명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일종의 황홀경. 몰아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면서 이런 텅 빈 상태에 이르는 방법으로 섹스, 명상, 춤, 음악 등을 나열한다. 이어 우울증, 뇌전증, 주위력 결핍 장애, 경계선 인격장애, 조현병, 조발성 치매, 루게릭 병 등의 여러 질병들에서도 이런 텅 빈 상태를 찾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이 "텅 빈 상태"에 이르는 또 다른 형태로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이란 결국 이 "텅 빈 상태"에 이르는 것이고 어쩌면 죽음이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학을 통해 증명된 우리가 세상을 파악하는 여러 과정들을 떠올렸다. 예를 들어 세상은 온갖 빛으로 가득 차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파장대만 받아들인다. 그리고 직립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눈에는 맹점이 생겼다. 이를 보정하기 위한 특별한 신호 처리 방식도 갖추었다. 이렇게 선별 가공된 시각신호는 다시 움직이는 것들만 포착해서 후두엽에 전달되고, 이 신호들은 해마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아 다시 필요한 뇌의 각 부분 전달된다. 그리고 렇게 의미를 가진 신호들만 우리의 뇌 속에 기억으로 남는다. 이렇게 현대 과학은 리가 보고 경험하다는 것이 가공된 정보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소위 "낮에 꾸는 꿈"임을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라는 존재는 내가 상상하는 나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과 인류 번영이라는 우주적 임무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내 마치 꼬물거리는 한낱 미생물처럼 느껴진다. 내가 기억하것은 정말 사실인지. 또 내가 이해하는 이 세상은 과연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하는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이 끝에 마지막 질문이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책은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꾼다. "과연 죽음이란 뇌에게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이 책에서 제일 재밌는 에피소드는 이런 것이다. 모두 잘 알다시피 임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가는 소위 유체이탈 체험다고 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를 다투는 환자의 소생술이 실시되는 공간에 환자가 유체이탈을 해야만 볼 수 있는 사진을 선반 곳곳에 배치했다. 그러니까 유체이탈을 해서 공중으로 뜨면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진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소생술로 되살아난 환자들에게 이것을 보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거의 대부분은 사진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유체이탈과 같은 어떤 느낌은 남아 있지만 자세한 기억은 대부분 사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 딱 한 사람은 유체이탈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증언했다. 새의 시선으로 아래를 굽어보는데 자기 소생시키려 애쓰는 한 건장한 남자가 있었고, 그쓴 머리 두건 사이로 대머리가 보였다고. 그리고 실제로 이 환자를 살린 의사는 대머리였다!  

!! (아싸 대머리~!)

과학자들이 유체이탈을 확인하려고 선반에 사진을 놓는 진지함도 재밌고, 유체이탈의 증거가 "그 의사 대머리!" 부분도 너무 웃겼다.

 

뇌과학 책 중에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형이상학과 과학을 종횡무진하는 책도 드문 듯하다. 과연 죽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고통스러울지 절망스러울지, 죽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 상태는 어떤 모습일지...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은 뇌가 "텅 빈 상태"가 되는 것을 권한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머리가 텅 빈 상태로 살기 때문에 이런 권고를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다. 텅 빈 상태가 되는 게 섹스처럼 그렇게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나는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가 여태껏 이 모냥으로 사는 게 뭣 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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