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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Jul 24. 2023

기어이 죽비(竹扉)로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나

정신이 번쩍 드는 고마운 충고

죽비는 불교에서 참선을 하는 도중 수도승의 흐트러진 정신과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이것으로 맞으면 아프지는 않지만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똬악!!!

외운적도 없던 주기율표가 갑자기 외워진 것 같은 기분!

죽비로 맞는 기분이 그렇다.


요사이 내가 하는 작품 중 하나몇 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다.  

이야기는 단순할 것. 주제는 명확할 것. 아이를 포함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울 것.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원안인 내 트릿의 이야기는 복잡하고, 주제는 난잡한 성인용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걸 어떻게든 쉽고 단순 명확하게 고쳐야 했다.

하지만 이건 마치 코끼리를 햄스터로 만드는 것 마냥 쉽지 않았다. 아예 그냥 햄스터를 입양하는 게 낫지 않나? 몇 번을 고민했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코끼리의 코도, 커다란 발도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려움은  있었다.

트릿의 많은 등장인물들을 네 명 이하로 줄이고,

이리저리 옮기던 배경은 한 군데로 좁혀야 했다.

마치 <12인의 성난 사람들> <로프> <폰 부스> <더테러라이브> 같은 영화처럼. 하지만 이런 극도의 효율적인 구성은 그려내기가 쉽지 다. (물론 하면 대박이다.) 때문에 계속 고민을 지만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궁리 끝에 이 이야기를 우선 동물로 치환해서 아이들이 읽 동화처럼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치타와 원숭이 그리고 늑대가 나오는 동화 비슷한 이야기를 게 됐다. 이후로 나는 이걸 바닥으로 놓고 작업을 다시 해보려고 계속 애를 썼다.

하지만 동화는 볼수록 구멍만 보였고, 이걸 바탕으로 쓰려고 하는 작품은 여전히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두지 각이 나오지 않았다. 변비여서가 아니라 먹은 게 없어서 똥이 안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유명한 동화 작가님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나는 불쑥, 염치 불고하고 모니터를 부탁한다며  동화(비슷한 것)를 보내드렸다.

그리고 그분께 들은 모니터는 정말 놀라웠다.


그분의 지적은 이랬다.

-. 이 동화를 읽을 때 독자가 공감을 느낄 수 없다.

-.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 이야기에 새로움이 없다.

-. 등장인물의 필연성이 떨어진다.

-. 주인공이 겪는 시련과 그걸 스스로 극복하는 서사가 없다.  


너무나 당연한, 어쩌면 뻔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똬악!!!

마치 죽비를 맞은 것처럼 엉터리 동화작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이 이야기는 해롭다!!

그분의 이야기는 사실 동화가 아니라도 소설이나, 영화, 연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지켜야 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중요하고 분명한 기본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느 모퉁이에서인가 나는 길을 잃고 화장실도 못 찾았다. 아무래도 똥은 못 싸게 될 것 같다.

목표가 아무리 분명해도,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누구나 길을 잃곤 한다.  

그 분의 모니터는 그걸 다시 되새기는 멋진 죽비의 순간이었다. 미친 타격감의 일갈이었다.

똬악!!!

어쩌면 나는 이 방향으로결국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아닐까 .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야 하는 길이고 해야 하는 일인다. 하지만 그 길을 실제로 걷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자진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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