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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Jul 18. 2023

글쓰기 2. 많이 삐딱하면 걸을 때 다리까지 아프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내친김에 앞서 말한 네 가지를 아낌없이 버무려서 글을 써보자. 그럼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쓸 수 있겠다.


제목.  몽룡의 네 가지 그림자.


<1 회>

한국에서 흙수저로 온갖 수모를 겪은 춘향은 마지막 을 탈탈 털어 꿈에 그리던 여행을 위해 유레일을 탄다. 그리고 그곳에서 돈이 없어 쩔쩔매는 잘생긴 청년 몽룡을 만나 돕게 된다. 서로에게 끌리는 두 사람. 두 사람은 빈에 내려 황홀한 하룻밤 데이트를 한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는 두 사람은 그러나 각자의 처지 탓에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울로 돌아온 춘향은 향단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향단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방자를 소개해 준다. 향단과 방자는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커플로 앞이 캄캄한 춘향에게 웃음보따리를 선사해 준다.


<2 회>

사실 몽룡은 누군가의 위협을 피해 유럽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춘향과의 하룻밤으로 추적을 피하고 파리에서 친구를 만나는 몽룡. 도움을 청한다. 친구는 흔쾌히 몽룡의 청을 들어준다. 하지만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친구. 몽룡은 서울로 돌아와 사표를 낸다. 검찰에서는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몽룡의 퇴직을 만류하지만 그의 생각은 분명하다. 그의 네 가지 계획 중 첫 번째였던 것. 퇴직을 축하하기 위해 출동한 방자로 인해 몽룡은 운명처럼 춘향과 재회한다. 그러나 지난 빈에서의 하룻밤이 껄끄러운 춘향. 한편 몽룡은 또다시 의문의 사내들에게 위협을 당하지만 춘향의 기지로 탈출에 성공한다. 춘향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돈문제 때문에 회사도 그만둬야 했고 이제는 백수라  막막하다고 말하는 몽룡. 그러자 동병상련의 따뜻한 위로를 하는 춘향. 그런 그녀에게 흠뻑 빠지고 마는 몽룡.


<3 회>

몽룡은 의절했던 할아버지를 10년 만에 다시 만난다. 할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재벌이지만 이제 늙고 병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할아버지와 의절한 것은 예술취향이던 아버지의 죽음을 할아버지가 방기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할아버지를 용서하라고 몽룡에게 부탁했었다. 그리고 이제 몽룡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기로 한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회사는 지금 부도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한편 몽룡이 떠나 있는 동안 할아버지의 손발이 되었던 변사장은 몽룡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할아버지의 회사는 적대적 M&A의 표적이 되어 고사되고 있었다. 이를 추진하는 상대회사는 일명 그레이라 불리던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 조직 <불사파>의 수괴 여명이었다. 변사장의 밀고를 받은 그는 몽룡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한철훈을 호출한다.


<4회>

시골의 어느 농장. 돈을 받으면 대상이 누구든, 그게 어린아이라도 모두 납치해 장기를 팔아넘기고 시신을 완전히 없애는 사업을 하는 한철훈은 여명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향하고. 한편 몽룡은 그의 두 번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To be continue-


이렇게 재벌 3세, 기업화된 조폭, 흙수저 춘향을 범벅하면 쉽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재미? 재미는 디테일에서 승부가 난다. 감동? 감동은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겪는 이야기의 곡진함에서 승부가 난다. 고난을 더 만들면 된다. 하지만 의미는? 의미라면 요새 유행하는 학폭을 슬그머니 끼워 넣으면 어떨까? 알고 보니 몽룡의 어린 시절 학폭으로 괴롭혔던 게 여명이고 마침내 이 질긴 악연이 몽룡의 복수로 끝이 난다면?


그냥 지난 글을 쓰다가  자리에서 죽 써 내려간 스토리라 엉성하다. 그래도 무슨 내용인지는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온통 어디서 본듯한 것들로 덕지덕지 기워져 있어서 그렇다. 어쩌면 누군가 어디선가 위의 이야기를 정말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네 가지를 피하자고 몸빵을 하고 있다. 생고생을 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그냥

내가 글 쓰는 게 삐딱하다는 이야기다.

그림을 못 그려서 쩔쩔매다가 사진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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