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와이프의 삶
누군가는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워라밸이 보장되기 어렵고, 개인시간보다는 업무 역량에 초점이 맞춰진 기업문화에서는 더더욱.
남편이 미국 주재원 발령을 받아 미국으로 왔다. 지역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아이는 영어 배우기 딱 적절한 시기였고, 남편의 주재원 월급은 내가 휴직을 하더라도 한국에서 둘이 벌던 것을 커버했다. 나의 직업은 얼마든지 휴직을 하고도 복직이 가능했다. 가지 않을 핑계가 아무것도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반장을 도맡아 하며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한 번의 휴학도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서 10년 이상을 달려온 나에게 출산과 동시에 주어졌던 육아휴직은 카오스였다. 하루종일 외출하지 않는 삶,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유의미한 의사소통이 없는 아기와 먹고, 자고, 싸고, 씻기는 것만을 반복하는 1차원적인 삶, 남편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복직하는 날, 내 관계, 내 자리, 내 일을 비로소 되찾은 느낌이라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일하기를 몇 년, 또다시 좋은 기회(?)로 휴직을 하게 된 것이다.
휴직에 들어가기 전 주변 지인들을 만나 인사하면서 '정말 하기 싫다'라고 털어놨던 기억이 난다. 나의 베이스는 없어진 상태에서, 업무 특성상 출장, 회식 등이 즐비한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 그 어떤 것도 기대되지 않았다. 다른 것이었다면 태평양 건너의 보금자리였으니 한국과는 무언가 다른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었을까.
하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시작부터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입국심사에서부터 내가 미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배우자 비자'였으며, 이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입국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나의 배우자를 먼저 찾았다. 현지에서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은행 카드 발급도 어려웠고, 직업이 없으니 커뮤니티도 없었다. 월급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보험, 거주, 교육비, 주유비 등도 모두 남편 회사에 귀속된다. 주재원 와이프는 여러 면에서 배우자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직업상 겸직이 금지되어 있고, 허락된다 해도 갑자기 이국 땅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이란 현실적으로 마트 캐셔, 파트타임 등뿐이었다. 언어, 환경 등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갑자기 파트타임을 시작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차가 곧 신발인 미국에서 최소한의 수단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에 입국한 주에 운전면허를 땄으며, SSN(주민등록증) 발급, 커뮤니티 컬리지 등록, 운동 등록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공허함과 단절감은 미국땅을 밟은 첫 달부터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Meet up에 등록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러닝도 하고, YMCA에 등록해서 운동도 해 보고, Adult School 수업도 듣고, 테니스, 골프 레슨도 등록해 보고, 매일 1시간 반 씩 고속도로를 타고 나가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ESL 수업도 등록해 보고, 야채들을 소분해서 홈리스들에게 나눠주는 봉사활동도 참여하고, 댄스커뮤니티에 들어가 수업을 듣다가 기회가 되어 팀끼리 대회에 참여하여 상도 탔다. 집에 많은 가족들을 초대하여 요리를 대접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틈날 때마다 캐나다, 멕시코, 미국의 온갖 국립공원들로 여행을 다녔다. 궁극적으로는 대학원 준비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많은 일들을 한 것 같지만, 실제로 깨어있는 시간 중 70%는 소파에 누워있거나, 장을 봐서 요리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봤다. 외출의 대부분은 '마트 탐방'이었다. 이방인에게 누구나 열려 있는 곳, 먹을 것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누구나 차별 없이 갈 수 있는 곳, 내가 돈을 쓰고 잠시나마 캐셔와 대화를 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곳. 바로 마트였다. 하지만 마트에서도 나는 나 자신이 카트 끄는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갈 곳이 마트뿐이니 화장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되었고 쇼핑 욕구도 사라졌다. 그러다 보면 매일 장보고 집에서 요리하는 진정 아줌마로 거듭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매일매일 루틴을 갖고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 일 없이 내 의지로 매일매일 내 하루를 채워나가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어려운 일인지, 직장이라는 연결고리로 억지로라도 만나야 하는 인간관계를 직장 밖에서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일 년의 반 정도는 울면서 지낸 것 같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아이만 아니라면 가족의 단절을 감수하더라도 벌써 실천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 전화 걸어 아이만 데리고 갈 테니 부모님 집에 살면서 내가 출근할 때 아이 등하교를 해줄 수 있냐고 여쭤보기까지 했다. 우울감과 고립감에 몸부림치며 너무 괴로운 마음에 심리상담을 신청해 매주 받았다. 남들은 잘만 지내는 듯한, 아니면 별 것 아닌 일상도 잘 만들어나가는 듯한 이 생활을 나만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걸까. 지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남편은 한국에서보다 몇 배로 과중된 업무를 처리해 내느라, 의전과 손님맞이, 원하지 않는 골프, 회식 등 업무 외로도 불려 다니느라 나와는 정 반대의 괴로움을 호소했다. 남편이 힘들어하면 안쓰러워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무쓸모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바라보다 남편을 바라보면 그저 부러워 보였다. 때로는 나의 모든 것을 단절시켜 놓고, 혼자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일에서 성장해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면 미움의 감정이 생겨나기도 했고 이 문제로 여러 번 싸웠다. 모든 게 여유롭고, 5시면 퇴근해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8시면 마을의 불이 다 꺼지는 곳에서 남편은 주말에도 회식과 골프에 불려 나갔다.
이쯤 되면 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싶다. 유독 출근하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직업은 아니었고 피로도와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쉬고 싶다, 다른 일 하고 싶다 등 크게 진심이 아닌 말들을 나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없으면 왜 이렇게까지 나의 삶이 무료를 넘어 힘들어지는 걸까. 단조로운 미국의 생활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지극히 구시대적인 남편 회사 문화 때문일까 생각하다가도 내가 게으르거나 창의적이지 못한 탓은 아닐까 생각하며 내 탓으로 자주 이어졌다. 무기력한 생각들은 소파 위에 누워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들을 몇 시간씩 넘겨가며 볼 때 가속화되었다. 영어 공부라는 가장 큰 목표가 있었지만 강제성과 함께 하는 이들이 없으니 자주 길을 잃었다. 이제는 출근에 대한 나의 머릿속 환상이 극대화되어 지하철을 타러 가는 일, 힘들어도 어떤 업무를 해내는 일, 사람들과 회의하는 일 등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가장 황금기인 30대 중반, 나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카페에 홀로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나. 이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누구에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이 괴로움에 시간이 어떤 응답을 해 줄지, 시간이 흐른 뒤 이때를 되돌아보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