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외국에서 따는 석사는 엄청나게 특별하지도, 어렵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던, 지금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기 때문에, 또는 새로운 관계나 문화를 열어줄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의 기대로, 크게 걱정 없이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첫 수업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한국에서의 강의식 수업과 달리, 3시간이 넘는 교육학 강의는 교수님이 관점만 던져주면, 학생들이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펼치고 그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며 토론을 베이스로 하는 수업이었다. 그냥 내가 강의를 열심히 따라가고, 공부를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가장 말이 빠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던 뉴욕인데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년 교사 생활을 이어오신 선생님들이 모였으니 강의실을 무대 삼아 말하는 것은 그들의 전문 분야였고, 가끔 교수님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모두가 자신감과 주도력이 있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의견을 나눌 동안 발표는 커녕 대화를 반도 채 알아듣지 못한 나는 식은땀이 흘렀다. 나에게 발언권이 올까봐 너무나 두려웠다. 열 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라 대중 속에 숨을 수도 없었다. 세 시간 수업이 30시간처럼 느껴졌다. 웬만하면 기가 죽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었는데, 그동안의 준비고 뭐고 중간에 그냥 지금 당장 나가서 집으로 갈까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처럼 느껴졌다. 언어가 무기인 수업에서 나 혼자 유치원생이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유일한 '국제학생' 이라는 점이었다. 즉, 영어가 주 언어가 아닌 사람이 나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인이었다. 집에 돌아와 평소 하던 화상영어 튜터들과 고민을 나누었다. 컬럼비아 대학원에 다니는 튜터는 자기반 학생의 80%가 국제학생이고, 수업에서 언어에 대한 excuse를 나누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국제 학생에 대한 배려도 잘 되어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컬럼비아 대학원이라고 하면 들어가기 어려운 엄청난 명문대일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합격하고 학과 오리엔테이션을 마칠 때까지, 컬럼비아 대학원은 학생수가 미달인지 애초 Deadline 연장에 연장을 거쳐가며 계속 지원하라고 연락이 왔다. 마지막 지원의 기로에서 등록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던 나는, 우리학교를 택했다. 하지만 첫 수업에서 이런 평생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나니, 나는 스무살때와 똑같이 또다시 가성비 선택을 한 건가, 슬퍼졌다. 하지만 또다시 시간과 돈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Program advisor이자 우리학과의 창시자인 교수님에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교수님 오피스를 찾아가서, 나는 언어문제도 문제지만, Teaching residency같은 여기서만 사용하는 용어들에 대해 기본 지식도 없는데,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수업 방식이다보니, 내가 이 학과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남아서 공부를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미국사람들 특유의 선을 지키는, 규정을 알려주는 식으로 마무리 될 거라 생각하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님의 답변은 나의 예상과 반대로 흘러갔다. 교수님은 "Thank you for being proactive for this problem."로 운을 띄웠다.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주어 고맙다고, 수업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네가 외국인일지라도, 네가 모를만한 주제나 정책이 부연설명없이 주어져서는 안된다. 이것은 내가 수업 교수님께 잘 이야기 하겠다(물론 네가 이야기했다고 특정짓지는 않겠다). 그리고 언어문제에 있어서는, 뉴욕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특히나 교육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의 언어에 대해 'Judge'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Cohort 교수님 중에서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교수가 있고, 그 교수는 아직도 언어에 있어서는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삶을 용감하게 이어가고 있다. 교수님은 나에게 “You’re fully qualified for this program.” 라고 말씀해주시며, 네가 아직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니 좀 더 지켜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교수님의 조언에 힘을 얻어 일단은 한 학기만이라도 다녀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자는 생각으로, 화요일 수요일에는 대학원 수업, 월요일 목요일에는 영어학원, 주 2회 화상수업, 매일 하는 스픽 인증, 나머지는 과제로 채웠다. 교수님 두 분께 나 혼자 공부하는 용도로만 쓸 테니, 혹시 강의 음성을 녹음해도 되냐고 여쭤보았다. 두 분다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두 수업 중 교육학 수업은 한 주에 읽어야 할 논문이 기본 100장이 넘었고, 이거라도 다 읽고 가야 한마디라도 운을 띄우겠다 싶어 매주 주말까지 모조리 투자해서 눈이 빠질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논문을 읽는 숙제를 제외하고도 매주 수업 전 Discussion Board, 수업 후 Critical Reflection 작성, 매주 돌아가며 Presentation, Paper 작성, Paper에 대한 Presentation 등 할 일이 끊임이 없었다. 나머지 한 과목인 통계 수업은 더했다. 3시간 20분 수업을 5분도 남기지 않고 꽉 채워도 교수님은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셨으며 다음 수업에 오기 전까지 해야 할 과제들을 요일별로 지정해주셨다. 수업 교재인 벽돌책을 제외하고도 매주 Problem Set, 3번의 Mini-project, Mid-term, Final exam까지. 나야 휴직중이라 쳐도, 뉴욕 선생님들은 출근하면서 이걸 어떻게 해내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학부때의 교육학 공부 경험이 있으니, 아무래도 익숙한 Learning Theories 과목이 더 수월할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언어를 도구로 하지 않는 통계 수업이 마음이 100배는 편했다. 미리 공부를 해가면, 수학적 용어 안에서만 수업이 이루어지니 교수님이 아무리 말을 빨리하셔도 90% 이상은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어떤 말을 하기를 요구받지 않으니 마음도 편했다. 그리고 수학 심화전공에서 배운 내용들도 있어 수학적 지식으로는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편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단어와 개념이 나와도, 그것은 나의 학과 학생들의 공통의 어려움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가능하다고 느껴졌다.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항상 미리 도착해서 준비하다보니, 한 주 한 주 조금씩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내가 대화에 항상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뉴욕시 선생님들은 이렇구나, 우리나라와 달리 교수님과 학생간의 위계가 없구나, 정말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고, 그것에 대한 찬성과 반대도 스스럼 없이 의견을 나누는구나, 매 주가 문화충격의 연속이었다. 선생님들 이외에도 특수교육 행동교정전문가, 비영리기구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었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진정성이 느껴졌다. 나를 배려하면서도, 항상 따뜻한 인사와 대화를 잊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를 위해 말의 스피드를 낮추거나 나의 배경에 대해 질문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들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대하는 느낌이었다. 발표에서 내가 10년 간 한국에서 했던 교육활동들, 미국과 한국은 교육과정이 어떻게 다른지를 소개하고, 내가 아이들과 자주 했던 게임을 반 학생들과 함께했다. 모두 선생님들이라 내가 일어나달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서 게임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졌다. 첫 수업때와 달리, 유학생들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아닌 현지 사람들과 머리를 부딪히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집단에 들어와있다는 점이 행운으로 느껴졌다. 또한 매 주 과제에서 교수님들이 좋은 점수를 주시고, 힘이 되는 피드백을 받는 것에서도 그래도 방향에 맞게 가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께 정말 감사하다, 그렇게 supportive 한 수업 분위기를 이끌어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수업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을 거라 말씀드렸다.
세상 차갑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뉴욕에서,
나는 가장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