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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y 01. 2024

한 달 만에 간 수영장

한 시간을 채우고 왔다

오월 일일. 근로자의 날. 학교도 쉰다. 근장은 12시부터.

4시 20분 기상. 부엌 선반정리. 5년 다이어리 어제 일자 작성. 크라프트노트에 일기 쓰기. 어제 대출해 온 <냉동반죽 베이킹> 책 보기.


일기를 쓰면서 하고 싶은 건 읽고 싶은 책 읽기, 해야 할 건 독서모임 책 읽기, 를 쓰고

궁금한데 독서모임 책에 밀려 펼치지도 못했던 읽고 싶은  발효빵 책을 폈다. 펼치기가 어려웠지 막상 펼치니 한 장 한 장 잘 넘어갔다. 전체의 책을 빵사진과 레시피를 훑으며 봤다.


어제저녁에 만들어 둔 풀리쉬가 있었다. 호두와 크랜베리를 넣어 오늘 만들려고 준비해 두었던 것. 호두도 어제저녁에 씻고, 삶고, 구워 전처리를 해 두었다.


책에 있는 레시피로 기본 바게트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겠다, 싶어 부엌으로 나왔다. 7시간 이상, 4월 그리고 5월 (4월 40일 밤 10시부터 5월 1일 5시까지)에 걸쳐  2배 이상 부푼 풀리쉬에 밀가루와 물, 이스트, 소금을 계량해 넣고 윌파 반죽기로 반죽했다. 반죽통째로 비닐을 씌워 1차 발효를 해 놓고. 하고 싶은 걸 하니 이어서 하고 싶었던 걸 또 하게 다.


중간고사 전부터 시험에 대해 생각하고 미리서부터 걱정하는 생활을 했다. 물론 학교생활과 근로장학생 근무시간을 보내면 학교 수업 교재를 미리 읽거나 수업 후 복습 할 시간도 내기 쉽지 않았다. 결국 방학 전에 계획했던 우선순위 1번, 수영 다니기는 후순위로 밀렸고 4월 초부터는 그마저도 뚝끊겼다. 강습도 미뤘다.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밀렸다.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두 주간 실행력이 아주 낮았다. 도피성으로 그리고 탈출구로 베이킹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매일 아침 빵을 구웠다. 더 몰입됐다. 빵 만들기가 재밌었지만 그 재미의 일부는 공부로부터의 도피처로서 그곳의 안락함을 더 절절히 느껴 가능했던 거 같다. 상황이 베이킹을 더 열정적으로 하게 했고 거기서 즐거움이 파생했고 일상의 기쁨이 피어났다.


우울성향이 강한 나,라는 자의식을 크게 갖는 내 삶에 기쁨이 존재했고 때론 넘쳐났다. 놀라운 일상의 발견이었다.


그때 나의 삶에 일 순위 취미로 자리매김한 베이킹이리는 즐거운 놀이를 하며 오늘의 글을 쓴다. 지금은 바게트 굽기 위한 예열 중. 우녹스는 큰 굉음을 내며 달궈지고 있다.


예열시간도 충분하고 2차 발효도 다 된 거 같아 광목 위에 있던 반죽을 도마를 이용해 팬에 옮기고 쿠프를 두 가지 모양으로 내고 스프레이를 뿌리고 전기포트로 물 끓여 오븐에서 달궈진 맥반석에 50미리 이상 고 팬을 넣고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 글을 쓴다. 10분 정도 구워지며 갈색 옷이 입혀지고 있는 중이다.


아차차. 어디까지 썼더라. 어제 만든 풀리쉬에 계량해 본반죽을 하고 1차 발효를 해놓고 한 달 만에 수영용품을 챙겨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에 다녀볼까 생각하고 바로 갔던 올 1월 2일 9시처럼.


미루면 더 갈 수 없어질 것 같았다. 4월 초에는 공부시간을 가지려고 수영장 시간을 뺐던 거였다. 그 시간은 공부대신 빵 만들기로 채워졌다. 다행히 시험 전 아니 한 달 전에 미리 공부했던 것과 시험 며칠 전부터 집중해 시험기간 동안 공부했다. 하던 만큼을 했고 그만큼의 점수를 받았다. 마음이야 만점 받고 싶고 그런 꿈을 꾸고 기대도 해보았지만 결과는 한 만큼이었고 조금은 더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웠다. 그래도 무난히 지나갔다. 이만큼인 것으로도 만족한다.

험에 대한 만족도 점수가 후해졌다. 잘이 아니라 그저 적당히여도 만족할 줄 알게 됐다. 시험도 가볍게 백하게 생각할 줄 알게 된 건가. 그렇다면 좋겠고 아니더라고 그렇게 차츰 변해갈 거 같다. 내 마음이 그렇게 변했으니까.


수영장은 자전거로 오고 가는 시간, 시작과 끝에 샤워하는 시간, 수영하는 시간 1시간 20~30분, 사우나 시간 20분~1시간, 도합 3시간은 소요된다. 그 정도의 시간을 예상하고 갔다.


어쩌지 힘든데. 25m 레인 끝에 가서 시간을 확인했다. 20분이 안 된 시간. 자유형으로 레인 한번 가고 쉬고, 평형으로 돌아와 쉬고. 50분 수업 후 30분 연습을 기본으로 하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강습시간인 50분은 하고 가야지. 힘들다고 조금 하고 가버리는 나쁜 습관은 안 만들어야지. 정각에 왔으니 옆 레인 강습 끝나면 그때 나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한  만에 간 수영 연습 시간을 채웠다.

옆 레인 수업은 58분이 돼도 안 끝났다. "미쳤대"라고 나와 같은 연습 레인에서 연습하던 아줌마가 말했다. 끝내고 나가고 싶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소리 같아서였을까.

그 말이 또렷이 들렸다.

정각이 다 되어 수업이 끝났고 거기에 맞춰 수영을 한 나도 덕분에 한 바퀴 더, 한 바퀴 더 하며 한 시간을 할 수 있었다.  


몸을 점프해 물밖로 나와 숨을 고르듯 호흡을 가다듬고 샤워실로 걸어갔다. 샤워기 온도 조절을 파란색으로 자꾸 내렸다. 찬물이 잘 안 나왔다. 거의 끝까지 내렸는데도 차가운 물이 안 나왔다. 여름이 가까워져서 찬 기운을 못 느끼는 게 아니었다. 오늘 물이 덜 차가웠다. 나오는 찬물에 수영복을 여러 번 헹구고 머리를 감고 샤워타월에 비누를 묻혀 몸을 닦고 솜털만큼 차가운 물로 헹구고서 수건으로 닦고 탈의실로 나왔다. 바디로션으로 양쪽 다리를 바르고 몸을 바르고 몸무게를 쟀다.


어. 어제 안 먹던 저녁시간에 토마토를 여러 개나 먹었는데 2킬로가 빠져 있었다. 방학 때도, 학교 다니던 학기 초에도, 하루 두 끼의 저탄 고지에 준하는 식사를 할 때도, 변함없던 몸무게가, 빵 만들면서 빵을 먹게 되고, 많이 먹게 되고, 거기에 아보카도와 아몬드 등 고지방식에 견과류를 많이 먹는데 살이 빠졌다. 낙낙했던 바지 허리가 여유가 없어졌나 갸우뚱거리게 되는데 몸무게 숫자가 줄어들었다.


몸무게는 의식하고 싶지 않아 오히려 의식적으로 잘 재지 안았다. 몸무게보다 나쁜 음식 먹기, 좋은 음식 챙겨 먹기, 한   먹기, 간헐적 단식하기, 를 실천하기. 그러는 중에 보충용으로 견과류 많이 먹기가 있다. 견과류 열량이 높아, 또 안 먹어야 할 밀가루를 빵으로 인해 먹고 것도 많이 먹는 날도 있는데 좋은 습관을 많이 지키고 실천하고 있어 빠지는구나, 다.

오늘은 체중계에 올라가며 어제 몇 달간 안 먹던 저녁까지 세끼를 챙겨 먹어 쪄 있겠지 생각하고 올라가서 더 놀랐다. 몸무게 빠졌겠지 생각하며 오르던 때는 그대 로고 안 빠졌었기 때문에 놀란 것도 있다. 잘 지키고 노력하던 때는 그대로였고 흐트러지고 더 먹어 살찔까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살찌는 시기에는 수영 가기 더 어려워질까 봐 그러기 전에 가자 맘먹고 간 거였는데. 빠져 있어서 놀랐고 좋았고 좋은 식습관 유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바게트 구우며 글을 썼다. 발효 중에 쓰기 시작해 성형해 오븐에 넣어 굽고 꺼내어 바게트 하나를 바질페스토 발라 먹었다.

풀리쉬를 이용한 반죽이 이스트로만 반죽하던 것보다 수분율이 높아 반죽 만질 때도 진 게 느껴졌다.

먹을 때도 이스트로만 만든 바게트와 맛이 다르다. 익숙한 맛이 안 났다. 더 부드럽고 더 무취한 맛. 더 좋았는데. 원래 심심함은 그대로. 그렇지만 달랐다. 더 편한 맛. 더 편한 속살. 겉의 바삭함은 같았고 향과 맛은 달랐다.

풀리쉬 반죽으로 처음해 본 바게트의 맛은. 더 순하고 부드러웠다. 먹을 때 같이 먹게 되는 코로 맡는 향도 연했다. 부드러운 아기 같은 향과 맛이랄까. 아이를 먹는 것에 비유해 좀 섬뜩하다. 먹는다가 아니라 부드럽다에 포커스가 있다. 지금 떠오르는 표현으론 순하다가 맞을 것 같다.


이제 근장 갈 시간.

아침에 일기 쓰며 하고 싶은 일로 읽고 싶은 책 읽기를 적고 그 책을 읽었고, 그 책 속에 있던 바게트 레시피로 바게트를 구웠고, 좋아하고 하고 싶던 일을 해서 하고 싶으면서 미루고 있던,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일을 먼저 하기로 하고 수영장에 갔고, 한  만에 수영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 시간을 채워서 하고 왔고, 집에 와 발효된 반죽을 바게트 모양으로 성형해 굽기를 마쳤고, 가장 잘 나온 걸 골라 손으로 찢어 먹고, 치아바타 만들려고 사둔 바질페스토가 생각나 뒷베란다 하부장에서 있던 새 바질페스토 병을 꺼내와 바게트에 발라 먹었다. 처음에는 짠맛이, 뒤로 갈수록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페스토에 든 기름이 부드러움을 만드는 걸 느꼈고 그 부드러움이 매력적이었다.


오늘의 아침은 어제 머릿속으로 계획한 것과 달랐다. 하고 싶은 걸로 채워진 시간. 좋은 내 시간을 가졌다. 수영장에서 투데이란 제목이 생각났고 그걸로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에 와 빵을 만들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연재를 시작하려다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걸 원하지 않아 부담스럽기도 하고. 매거진으로 만들어 영어로 today로 제목을 쓰고 발행을 시작했다.


예열 중 쓰기 시작해, 선형하고 다시 쓰고, 굽고 나서 다시 쓰고, 도서관으로 근장 출근해 다시 쓴다. 똑같은 일 설명이 몇 차례 반복적으로 쓰여있다. 끊고 다시 이어 쓰며 정리해 또 쓴 것. 그만큼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좋았던 거 같다. 쓰고 또 쓸 만큼. 이제 다시 공간을 이동한다.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이후 근무 5시간은 독서모임 책 읽으며 정리에 할애할 생각이다. 오늘을 차곡차곡 계단 쌓듯 기록하게 해 준 브런치의 매거진아 고마워! 너의 닉네임을 생각해 볼게. 참고로 오래 걸릴 수 있어. 아주 오래. 내가 이름 짓기를 거의 안 해 봤거든. 안 해본 건 어렵거든. 그래서 한없이 미루기가 가능하거든. 그러다가도 대뜸 떠올라 빠르게 정해질 수도 있지. 그건 몰라. 나도 그리고 아직은 이름 없는 너도. 이러니까 궁금해진다 너의 이름이 ㅎㅎ. 안녕 오늘의 나의 일기장! 내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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