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Jan 05. 2023

Somewhere, over the seoul

구원에 온점을 찍으면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광화문 길을 지나며 교보문고 건물 외벽에 봄 문안이 걸린 것을 보았다. 올해 광화문 에세이 공모전에 지원했었는데, 그때 보았던 글귀였다. K야, 저거 내가 지원한 공모전 문안이었어. 기억해? 묻는 내게 넌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신기하다고 답했다.


사실 몇 십분 전 청와대를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잠시 꽤 먼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가자면, 내가 13살 즈음으로. 엄마와 처음으로 경복궁을 둘러 걸으며 어쩌다 보게 된 청와대는 내 꿈의 출발선이나 다름없었다. 열세 살의 나는 뉴스에서만 보던, 대통령님이 사신다던 그 파란 지붕에 그만 홀렸다. 토끼눈을 뜨고 그저 넋을 놓은 채 입을 벌리고 섰던 내게 엄마는 저 건물이 멋지지 않냐 물었다. 엄마, 내가 커서 훌륭한 기자가 되면, 저기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 하고 엄마는 답했다. 눈에 들어오는 흰 기둥이 아득했다. 촘촘하게 날이 선 울타리 바깥으로 경찰 아저씨들이 총을 든 채 지키는 그곳을, 언젠가는 멋진 어른이 되어 꼭 당당하게 들어가리라 다짐했었다. 그때가 꿈에 붙어버린 불길의 시작이었던 건 아닐까. 붉던 단풍나무들과 흩날리던 노오란 은행잎, 그 사이로 보였던 가장 순수하게 꿈꿀 시절을 닮아 푸르게 물든 지붕. 열세 살의 가을. 그곳은 어느 정치적 의사도 미치지 못했던 나만의 꿈이 살아 숨 쉬는 미지의 세계. 성스러운 신전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넌 음, 별 감흥이 없어.라고 하더라.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와 있는 거야 우린. 신기하지 않아?라고 재차 묻는 내게 넌 조금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너에게 내 어릴 적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넌 아까와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꽤나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청와대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외교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문득 너의 꿈이 기억이 나 급하게 네 옷소매를 붙잡았다. 저기서 일하고 싶지? 했더니 응. 하고 사진을 찍던 너. 느지막이 지는 햇살이 부서지던 건물을 앵글에 담는 그 뒷모습에는 참 많은 감정이 어렸다. 난 그 뒷모습을 안다. 꿈꾸는 자의 뒷모습이다. 설렘, 불안, 동경. 그 뒷모습은 꽤나 가볍지 못하다. 난 그런 너의 뒤에 서서 네가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네게서 나를 느꼈다. 내 고뇌를, 내 시간을 보았다. 세게 움켜쥐어 손바닥에 났던 자국과 일그러지던 미간과 물어뜯다가 피가 나 버린 입술이 따가웠던 날들, 그런 것들. 너의 손을 잡고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도 너의 옆모습을 가끔 올려다볼 때에는, 광화문을 걷던 옛날의 내 모습을 조용히 상기했다. 광화문 길거리에 늘어선 수많은 신문사들의 건물들. 모 일보, 모 신문, 광화문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유난히도 커 보이는 건물들 아래서 그걸 올려다보는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몇 년간 품었던 꿈은 어른이 되며 얼마나 그 형태가 변하고 색이 바랬던가, 저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 안은 몇 배로 더 혼란스러운 색을 띠는가. 너의 손을 잡고 걸으며 있잖아, 난 저 건물들을 보면 마음이 이상하게 떨려,라고 말했다. 그때 넌 유난히 내 손을 꽉 쥐었던 것도 같다.


걷다 걷다 도착한 시청의 빛깔이 푸르렀다. 대한민국의 한가운데 있는 서울, 그 서울의 꺼지지 않는 코어가 되는 시청사. 그 앞에 선 너는 불현듯 내게 말을 꺼냈다.

아까 청와대를 봤을 땐 몰랐는데, 시청을 보니까 네가 느끼는 감정을 좀 알 것 같아.  아까 그랬잖아. 대한민국의 가운데나 다름없다고. 어, 근데 지금은 좀 경이롭다는 게 뭔지 조금씩 느껴져. 혼자 왔으면 몰랐을 거야. 조금씩 뭔가 깨어나는 느낌이야.


도시 곳곳에서 우리 흔적을 발견하는 게 참 재밌잖아. 길가에서 그대가 꾸었던 꿈을 마주치고, 그 꿈을 꾸었던 나의 시간과 감정들이 묻어나는 게 신기해서. 그걸 찾고 싶어서,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많이 서울을 걸었던 게 아닐까. 이젠 너랑 같이 하고 싶어. 내가 너한테 더 많은 걸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는 우리 위로 시청의 푸른빛이 출렁거렸다. 그렇게 결연한 다짐을 하는 내 짐짓 진지한 얼굴을 넌 바라보며 웃어줬다. 그게 참 고마웠다.

작가의 이전글 아차산 정상에서, 2022년의 이터널 선샤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