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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리 May 26. 2023

어떻게 흔들리는 것까지 사랑하겠어 기차를 사랑하는 거지

"기차에서 일기를 쓰는 건 내릴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을 거야"

첫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쓴 일기

‘무슨 일들이 생길까?,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멋있을까?, 유튜브에서 봤던 그 사람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잊지 못할 추억들을 얻게 될까?’ 하는 생각들을 하며 기차를 탑승하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불확실할 때 일주일 동안은 잠을 잘 숙소, 길을 잃어버릴 걱정 등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침대들을 지나 일주일 동안 호텔, 책상 심지어 식당의 역할까지 할 나의 침대를 찾았다. 침대 위에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침대, 베개 커버와 두꺼운 이불 한 세트가 있었다. 커버를 침대에 씌우고, 짐을 아래에 내려놓고 정리를 하던 중 큰 엔진소리와 함께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 열차는 모스크바를 도착하기 전까지 멈추는 날이 없을 것이다. 어둠에 익숙한 동물들까지 숨죽이는 아주 깜깜한 밤조차도 말이다.  

타자마자 신기한 일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일이 없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말주변이 없고 낯을 많이 가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낯선 장소조차 싫어하는 나인데 정작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과 수다라도 떨거나 유튜브를 보며 지루하고 어색한 시간을 보내버리고 싶어서 말이다. 이러한 계획은 철저히 실패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움직일 때 데이터나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 아니 핸드폰 자체가 먹통이다. 잠시 역에 정차할 때만 핸드폰을 사용해 연락을 하거나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길어봤자 하루에 한 시간이 안 될 것이다. 그것도 하루에 정차하는 모든 시간을 합쳐서 한 시간이다. 정말 짧게 머무는 역은 10분 정도인데 그때에도 우리나라의 인터넷 속도의 1/10 정도의 속도를 가지고 핸드폰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동영상을 보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그 쉬운 카카오톡도 답장을 받기는커녕 ‘살아있다.’ 생존신고를 하는 4글자도 보내기 힘들다.

요즘 아니 예전부터 어린이, 청소년의 문제점 중 하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인터넷 중독이 이라고 말을 한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하되면서 어린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도 인터넷에 중독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 조그마한 네모박스에 손가락만 움직이면 배꼽이 빠질 정도로 나를 웃겨줄 동영상들이 하루에 몇 천 개씩 쏟아지고 집에 있는 가까운 사람부터(tmi이지만 같은 집에 사는 동생을 부를 때도 귀찮아서 카카오톡으로 부른다. 특히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 심지어 바다 건너 있는 사람들한테도 손쉽게 연락해 앞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했던 책도 밖에서 노는 것도 멀리하고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유튜브를 보면서 것을 택했고 방을 청소하거나 목욕을 할 때에도, 심지어 쉴 때에도 온전하게 뇌가 쉴 수 있게 멀리 두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을 틀어놓고 누워있으며 핸드폰과 한 몸이 되는 그런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냈다. 이러한 나에게 기차라는 특수한 환경이 아무것도 없이 시간만 잘 가던 그 어린 시절처럼 온전한 24시간을 가져다주었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없다. 노트북도 마찬가지로 할 수 없다. 음악도 지금 원하는 음악을 바로 틀어 들을 수 없다. 다운을 받아오지 않았으면 끝이다. 흥얼거리며 직접 불러 듣는 수밖에. 그럼 운동? 열차의 장소는 한정적이다. 축구 야구는 상상도 못 하고 하다못해 한 자리에서 뛰는 러닝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요리까지 여기서는 주방이 없다. 잠? 그래 공부하느라 돈을 버느라 힘든 한국의 사회생활을 하며 못 잔 잠을 실컷 잔다고 해보자. 하루에 내가 가장 많이 잤던 시간을 기준으로 15시간을 잔다고 해도 9시간이 남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 인가? 어떠한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내가 택한 것은 뻔해도 일단 눕는 것이었다. 위처럼 뭐 하고 현실을 깨닫고 대체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제 겨우 첫째 날인데 아직은 지루하지 않았다. 갑자기 주어진 긴 시간에 당황스러웠고, 어떠한 물건 없이 시간을 보냈던 일이 너무 옛날옛적이라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누워서 눈을 감고 슬슬 어둠이 오니 잠을 자려고 했다. 지금 상황에 맞는 음악도 아닌 핸드폰을 처음 샀을 때 저장해 둔 오래된 노래를 들으며

못했다. 생각보다 기차가 많이 흔들렸다. 눈을 뜨고 앉아있으며 그나마 좀 나은데 눈을 감고 누워있기까지 하니까 더 많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일기를 쓰자. 시간은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이 수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을 남기는 거야 두 줄을 쓰고 포기했다. 기차가 흔들려 글씨를 쓸 수가 없다. 더 시도하려고 해도 기차에 희미하게 들어오는 불빛들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고 전등은 애초에 없었으며 사람들은 하나둘 잠에 들어 다른 것을 하려고 시끄럽게 움직이는 것도 민폐였다.

그래서 결국 또 누웠다.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눈을 감고 흔들거림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할 수 밖에는  


자는 것조차 힘든 여기서 나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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