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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가 철들었네

커갈수록 더 귀여운 고양이

by 모니카
어른스러워진 차르


어린아이가 철들어 가는 것은 기특하고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고양이도...



시온이는 어른들 틈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노래미사를 드릴 때 8살짜리의 맑디맑은 목소리가 들릴 때면 모두들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성시 교송이나 주기도문, 혹은 아는 성가를 부를 때면 부끄럼 없이 목청껏 부르고, 잘 모르는 곡은 어물어물하면서도 끝까지 부른다.


우리는 시온이를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다.

엄마 품에 있을 때도 봐왔고, 성당을 휘젓고 다녀 붙잡으러 쫓아가야 했을 때도 기억한다.


코로나 이후 못 본 4년 동안 어느덧 훌쩍 커서, 미사시간 내내 꼼짝하지 않고 집중하는 어린이가 되어 다시 만났다.


"시온이 어쩜 그렇게 의젓해?"

칭찬을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되었다.

한 살 한 살 먹으며 참을 줄 알고 분별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기특하고 신통하다.


철들어 가는 건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이제 2살 5개월 된 우리 차르도 아깽이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고양이 시계는 사람시계보다 5배 더 빨리 가니 철들고 변해가는 것도 5배 빠를 것이다.

차르 나이를 사람나이로 환산해 보니 25살 8개월이라고 한다.

벌써 청년기가 되었다.



차르를 생후 2개월 때 만났으니 그때 사람 나이로는 3살이었다.

타고난 성격이 얌전한 녀석은 아니었는지 만난 첫날부터 사람을 경계하기는커녕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노는 것도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쉴 새 없이 뛰다 결국 지가 지쳐 헥헥 개구호흡까지 하며 차가운 타일바닥에 가서 뻗었다.

항상 놀아주는 사람이 먼저 지쳐서 우리 식구는 순번을 정해야만 했다.


차르가 지칠 때까지 노는 것을 보면 나 어릴 때가 떠오른다.

6살 때인가,

집채만큼 높다란 낟가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했었다. 푹푹 빠지는 짚더미 위로 엉금엉금 기어올라가서 뛰어내리면 짚더미에 포옥 싸이는 게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해가 지도록 수없이 뛰어내렸다. 그 바람에 다음날 다리에 알이 배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며칠을 끙끙 앓았다.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눈 썰매장도 아니고, 뒷 산 얼어있는 비탈길을 종이 박스를 타고 끝없이 오르내렸다.

볼이 새빨갛게 되고 손이 꽁꽁 얼고 발이 시려도 그칠 줄을 몰랐다.


어릴 땐 그렇게 다 놀이에 진심인가 보다.


청년기에 접어든 차르를 그렇게 대접했다 흠칫 놀랄 때가 있다.

누가 봐도 가짜인 커다란 깃털이나 장난감을 흔들어 대면

"장난하냐?"

하는 표정으로 흘낏 쳐다보고 저쪽으로 가버린다.


이제 놀이에도 고도의 스킬이 필요하다.

진짜처럼 보이는 크기와 모양의 작은 벌레나 쥐꼬리 같은 것을 보일랑말랑 숨기며 흔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차르가 사냥감 포획에 흥미와 긴장감을 느껴서 반응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못 참고 섣불리 사냥감을 노출시켰다가는 그날 놀이는 재미없게 끝나버린다.

중고등학생이나 청년한테 딸랑이를 흔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차르랑 놀기는 어릴 때보다 즐거우면서도 더 고되다.



먹성도 좋았던 아기 차르, 습식 건식 모든 츄르, 비스킷을 다 잘 먹었다.

주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우물우물거리고 있으면 쫓아가서 물리더라도 뺏어야 했다.

지금은 아무거나 안 먹고 우선 코부터 들이밀어 냄새부터 킁킁 맡는다.

호불호가 분명해졌다.


어느 날 보니,

너무 이른 새벽에 깨워서 모른척하면 깨워봤자 소용없는 줄 알고 조용히 더 기다릴 줄도 안다.

격하게 뛰다가, 지쳐서 그러는지 요령을 피우는지 에라 모르겠다 주저앉아 버린다.

맘에 들어하는 장난감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치아가 안 좋다고 해서 목숨 걸고 양치를 시켜줘야 한다.

좋아하는 사료와 간식이 딱 정해져 있어서 선택에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편식일까 걱정된다.


눈치도 볼 줄 안다.

식구들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심각하게 대화를 하고 있으면,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구석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캣타워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긴 듯 조용히 창밖을 내다볼 때가 많다.


이제 2살 5개월!

사람이라면 한참 귀엽게 재롱을 부릴 아기인데, 8살인 시온이 보다 더 형이 되었다.


성묘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귀여운 모습의 차르가, 아니 커갈수록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차르가 생의 시곗바늘을 너무 빨리 돌려, 늙은 엄마보다도 더 빨리 죽음의 문으로 달려가고 있다.

차르의 유아기와 성장기를 이미 보았고, 장년기 노년기를 내 생애에 다 볼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렵긴 하다.


차르가 점잖게 철들어 가는 것도 좋지만 역시 우다다다 뛸 때가 더 좋다.


고양이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과거나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이 없고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행동에 집중하고 복잡한 시간 개념에는 관심도 없게 진화되었다.


고양이는 시간을 모른다는 이 사실은 정말 위안이 되는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차르와의 삶이 의미 있고 행복할 있도록 차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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