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배운다
우리의 태도가 정성이 없어 보였는지 몇 해 전에 시어머니가 이젠 '추도예배를 드리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홧김에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번 해보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아들도 아뭇소리 못했다.
남편은 외아들이라 명절이라 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찾아갈 곳도 없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이젠 부지런히 갈 친정도 없다.
설날이지만 긴 연휴도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어제는 종일 전을 부쳤다.
고추전과 꼬치산적 동태 전을 저녁 5시까지 부쳤다.
이 세 가지는 명절을 알려주는 우리 집 고정 음식이다.
고추전과 꼬치산적은 아들들이 좋아하고 동태 전은 어머니와 남편이 좋아한다.
명절에나 먹는 흰쌀밥에 고깃국이 아니라 명절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치즈소고기 고추전과 꼬치산적이다.
시장에 가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평소에는 먹고 싶지 않다가 명절에만 생각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음식이다.
큰형을 물어서 쫓겨난 차르가 서럽게 울다 주방에 종일 매달려 있는 내 발 밑에 쪼그려 앉았다.
기름이 튄다고 발로 자꾸 밀어내니까 닫힌 형 방 앞으로 다시 가서 한참을 야옹 댔다.
그래도 열리지 않는 문에 힘없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캣폴로 올라갔다.
밥 먹고 그루밍할 때, 혼났을 때, 졸릴 때, 창밖이 궁금할 때, 장난하다 숨을 때... 언제나 찾는 캣폴 투명해먹!
차르 발바닥과 똥꼬 얼룩이 잔뜩 묻은 아크릴 해먹에 동그랗게 몸을 구겨 넣고 두 팔은 밖으로 뻗은 채 창밖을 내다본다.
그 모습에 울다 지쳐 눈물자국 길게 남긴 채 잠든 아이 모습이 생각나 미소 짓게 했다.
차르의 모습을 보니 남몰래 눈이 붓도록 울었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올랐다.
강소천의 장편동화 "진달래와 철쭉"은 책을 읽고 우는 첫경험을 한 책이었다.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형제 이야기였는데 무엇이 어린 나를 그렇게 울게 했을까?
얼마 전까지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던 책이었는데
복간이 되었다고 하니 다시 보고 싶다.
때론 차르한테 배우기도 한다.
매를 들어야 할 말썽장이었다가
갑자기 깊은 사색가가 되어 들은 매를 멈칫하게 하는 고양이!
기르는 게 아니라 내가 훈련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온갖 유혹에도 눈도 깜짝 안 하고 오랫동안 한 곳을 응시하는 고양이 자태에
나는 왜 이렇게 분주하고 산만한가... 풀이 죽는다.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도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고양이 연두색 눈동자에
잠시도 고요히 침잠치 못하는 나는 부끄럽다.
잠깐 눈길을 멈추면 소리 없이 사라져 하던 일을 멈추고 허둥지둥 찾게 만드는 고양이,
존재의 가치란 이런 거라고 일깨운다.
전 부치기를 완료하고 거실에 눕자 차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차르야 좀 쉬면 안 되겠니?"
누워서 2.4m짜리 낚싯대를 흔들었다.
차르는 바짝 몸을 낮추고 귀를 뒤로 재치고 궁둥이를 씰룩대며 장전 완료 상태다.
펄럭대는 날개에 좌우로 몸을 돌려가며 미어캣처럼 두 발로 서서 묘기를 부리고, 거실바닥에서 도망치는 날개 달린 벌레를 쫓아 다다다다다다다... 정신없이 뛰었다.
다시 3살짜리 개구쟁이로 되돌아간 차르!
"그렇게 심심했어?
아이고 엄마 힘들다. 형아야 차르랑 놀아줘라~"
나와 놀면서도 온 신경이 형아 방에 가 있는지 계속 그쪽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방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기라도 하면 귀를 쫑긋 거리며 뛰다가도 멈춘다.
"그러게 왜 형아를 무는 거야. 제일 좋아하면서..."
아들 다리와 팔은 차르가 물어서 회초리 자국처럼 찬란하다. 여름이면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라는 걸 광고하고 다닌다
성질 좋은 아들도 호되게 물리면 차르를 사정없이 내쫓아 버린다.
'고양이가 무는 이유'
'무는 고양이 대처법'
'무는 고양이 참 교육'
'무는 고양이 버릇 고치기'
'무는 고양이 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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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비결을 동원해도 차르의 무는 버릇 고치기에 실패했다.
심지어 Y쌤 라방에 돈을 내고 상담도 했건만 그야말로 냥바냥이었다.
닫힌 방문에 매달며 엄마 찾는 아기처럼 서럽게 울면서 왜 그렇게 무는 지 그 마음을 알고 싶다.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방문이 열리면
차르는 냐~~하고 소프라노 소리를 내며 달려들고 아들은 오구오구하며 서로 비벼대는 것이 마치 몇 달만의 상봉 같다.
나도 만만치 않게 물린다.
너는 좋아하면 무니?
무는 게 너의 사랑법이니?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와 아빠는 대줘도 물지 않는다.
작은 형은 아주 가끔 문다.
못된 사랑 표현이다.
차르야~
올해는 한 살 더 먹고 무는 버릇은 제발 고치자!
차르와 세 번째 맞는 설날이다.
첫 설날은 아팠고 두 번째 설날은 손님처럼 어딘가에 가 있었고
세 번째 설날은 지 세상이다.
넙죽 세배하는 형아들 틈에 껴 할머니가 내미는 세뱃돈 봉투에 코를 바짝 대고 킁킁거린다.
"너도 세뱃돈 줘?"
다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할머니 목소리!
서른 살이 넘어도 결혼을 안 하는 아들들아,
할머니가 증손주를 기다리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