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집에 얹혀 삽니다
차르가 온 후론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열면 어느새 고양이 용품울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바지 하나 살까 했다가도 결국 지르는 건 차르 물건이다.
문제는 차르 비위 맞추기가 하늘의 별따기란 사실이다.
고양이들이 환장한다는 간식도 조립하기도 전에 들어앉는다는 숨숨집도 모두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다.
다행히 좋아하는 사료와 간식, 장난감을 겨우 건지기는 했다.
하지만 가끔은 색다른 걸 먹이고 싶고 주고 싶어서 시도했다가는 영락없이 돈낭비만 하게 된다.
얼마 전 다이소에 갔을 때 뻔히 헛수고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새 반려동물 용품 코너에 서있는 것이었다.
새로 나온 것이 없나 서성이는데 직원이 못 보던 용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고양이 빵가게'!
조립하게 되어 있는 종이 숨숨집이었다. 또 헛수고할 게 뻔해 지나치려는데 가격이 단돈 3,000원!
돈 잃어버린 셈 치고 들고 왔다.
그런데 대박이 났다.
새로운 것을 보면 항상 그렇듯 어김없이 달려들어서 몇 번이나 물려가며 겨우 조립을 했는데 조립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
역시 고양이한테 박스는 국룰이다.
안에 스크레쳐까지 있는 세모 지붕 집 모양이었는데 '3,000원이면 너무 싼 거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날 정도로 무늬며 재질이 괜찮았다.
모처럼 차르 맘에 쏙 드는 물건을 찾았다.
하지만 종이집이라 차르 이빨에 엉망이 되는 바람에 또 한 채를 사들여서 영업 중인 고양이 빵가게가 두 채가 되었다.
작년에 신부님과 함께 심방 오신 홍마르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거실을 보고 놀라셨다.
햇빛을 가장 잘 받는 창가에 높다란 캣폴과 캣타워가 떡 자리 잡고 있고 책꽂이 앞에는 캣휠, 여기저기 숨숨집에 스크레쳐, 한쪽 구석에 대형 화장실까지...
나열하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고양이 집에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사는 모양새 같으니 고양이를 싫어하시는 마르다 어머니는 혀를 내두르실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차르 용품 가득한 우리 거실에 불만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쓸데없이 똑같은 '고양이 빵가게' 숨숨집을 두 채나 사들인 것보다 차르가 두 채를 다 잘 사용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차르의 잠자리는 수시로 변한다.
양치를 끝낸 차르는 12시쯤에 캣폴의 투명해먹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창가라 밤이 깊어지면서 공기가 선선해지면 내려와서 포근한 담요가 깔려있는 공 모양의 동굴 숨숨집에 들어가 몸을 말고 잔다.
동굴집이 더우면 이번엔 빵가게 숨숨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대자로 뻗고 자는 것을 좋아하는 차르는 얼마 있다 다시 나와 이번에는 널따란 애착박스로 옮겨 쭉 뻗고 잔다.
언제부턴가 나는 거실에서 잔다.
방에서 자면 새벽에 차르가 하도 시끄럽게 깨워서 나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잠을 설쳐 둘 다 힘들었기 때문이다.
섭섭하게도 차르는 절대 방에서 같이 안 자고 거실에서 홀로 자는데 시계를 볼 줄 아는지 정확하게 새벽 다섯 시만 되면 깨우러 온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아들은 방문을 닫고 자니까 들어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데 우리 방문은 닫아 놓았다가는 새벽에 윗집 아랫집 항의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제는 새벽 다섯 시가 되어 차르가 내 머리맡에 와서 작은 소리로 '냐~'해도 눈이 번쩍 떠진다.
비몽사몽간에 습식을 1/2을 주고 다시 잠이 들고 차르도 빈 속을 채우고 네 개의 잠자리 중 어딘가에 들어가서 잠이 든다.
그런데 요즘 고민이 생겼다.
차르와 한나절만 떨어져 있어도 눈과 코가 편해져 살 것 같다고 하는 아들방에 차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아들 책상 의자에서 차르는 밤 8시경부터 10경까지 꿀잠을 잔다.
너무 곤히 자서 쫓아내지도 못한다.
반려동물 입양 시 알레르기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데 우리는 엉겁결에 차르를 맞이하게 돼서 아들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최고 6단계에서 5단계나 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차르가 막 왔을 초기에는 아들도 견디기 힘든지 차르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에 반대를 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아마 차르는 다른 집 식구가 됐을 것이다.
차르를 입양하고 싶어 하는 청년이 나서기도 했지만 하루하루 미루다 정이 들어버려 결국 보내지 못했다.
식구들 중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는데 혼자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마음껏 안아주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어떤 사람은 심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데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니 없어졌다고 희망을 주지만 고양이 알레르기는 면역력이 생기거나 없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아들이 알레르기 약을 타러 갈 때마다 의사는 '아직 고양이 키워요?'라며 딱하다는 듯이 묻는다고 한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줄 알면서도 키우는 사람도 많고 동물병원 의사들도 약을 먹어가며 진료를 한다고 하니 이제는 아들도 운명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차르와 헤어지는 것은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차르를 어떻게 할지 갈등하는 단계도 이제는 지나버려 엄마는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
아들이 독립하거나 결혼을 해야 고양이 알레르기에서 자유로와 질 것 같다.
최근 동물 털 집진에 좋다는 헤파필터 청소기로 바꾸고 밤늦게라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를 돌릴 때도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일일이 다 들고 구석구석 돌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털뭉치가 구석에 뭉쳐있다.
차르는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만 나면 꽁지가 빠지가 도망가더니 이제는 따라다니며 냥냥펀치를 날릴 만큼 대담해져서 청소하는 것을 방해한다.
혼구녕을 내야 하는데 그것도 귀엽다고 무거운 청소기를 진땀 빼며 돌린다.
아~ 글을 쓰고 보니 온통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운 점만 나열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차르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겁고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으니 참 홍마르다 어머니가 보시면 한심하고 딱하다 하실 것이다.
말 수 적은 우리 식구들이 주로 하는 말은 차르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차르 밥 줬어?"
"차르 간식 몇 개 먹었니?"(어머니가 정해진 개수보다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얘 어딨어요?"
"차르 화장실 청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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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께 조공 바치며 사는 우리 집을 이해하는 분이 계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