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들아 이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렴!
"어? 차르 발 왜 그래요?"
"어? 이게 뭐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차르 왼쪽 뒷다리 안쪽에 동그란 상처가 보였다.
피도 맺혀있고 상처 크기도 제법 컸다.
붙들고 자세히 보고 싶지만 이 녀석이 순순히 다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 뻔해 초집중 스캔하며 뒤쫓아 다녔다.
얼마 전에 젤리를 어디서 다쳤는지 피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다녀서 온 식구가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날카로운 무언가에 세게 부딪혀서 난 상처임이 유력했다.
차르는 사람으로 치면 덤벙대고 찬찬하지 못한 개구쟁이다.
노는 것이 하도 거칠어서 다칠까 봐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놀라서 소리를 지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깨물고 혼나서 삐졌을 때나 기분 좋을 때는 높은 캣휠을 깃털처럼 가볍게 소리 없이 뛰어오르지만 놀 때는 우당탕탕 난리도 아니다.
덜렁대는 통에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기도 하고 캣폴 4층에서 까불다가 2번이나 수직 낙하하기도 했다.
내 반사신경으로 떨어지는 차르를 재빨리 받은 적도 있다.
작은 캣타워는 수시로 나사를 조이지 않으면 흔들려서 옆으로 쓰러질 지경이고 캣휠도 휠이 튕겨 나올 정도로 빠르고 힘차게 돌린다.
그 바람에 아래층 아주머니가 쫓아 올라와서 해가 지면 얼른 잠가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밤만 되면 더 타려고 움직이지 않는 휠에 올라가 왜 안 돌아가냐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쳐다본다.
"그니까 낮에 타라니까!"
개는 산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고양이는 놀아주는 것이 필수다.
노는 게 부족하면 우다다는 물론 기운도 없고 우울해 보인다.
낮에 덜 논 날은 한밤중에 거실을 빛의 속도로 질주하고 책상, 식탁, 창 틀 할 것 없이 온 집안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닫아놓은 거실 창 앞에서 충돌 직전에 급정거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디 부딪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길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 속에서 노곤하게 누워있는 차르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차르가 다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 같다고 빗질 좀 해주자고 남편이 말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차르는 옆으로 다리를 뻗고 누워서 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가볍게 빗질을 하고 쓰다듬으니 의외로 반응이 얌전하다
나의 목적은 이 기회에 다친 다리의 상처를 살펴보는 것이다.
뾰족한 것에 찍힌 것처럼 작은 상처가 있었고 상처 주변으로 동그랗게 털이 빠져 있었다.
그루밍하다 뽑힌 것인지 염증으로 탈모가 된 것인지 꼭 원형 탈모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시선을 끈 후 면봉에 빨간약을 묻혀 살짝 눌러주었다.
바르자마자 핥으려고 해서 얼른 안아 주었다,
다행히 요즘엔 안기는 걸 좋아해서 마르기를 기다릴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당장 병원에 가야 할 것처럼 조급했지만 활동량이 여전하고 먹는 것도 잘 먹어서 아물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아 안심이 되었지만 상처가 없어지지 않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자라면서 한 번쯤 깁스 안 해 본 사내 녀석들이 없는 것 같은데 꼭 그런 아들 바라보는 기분이다.
아들도 역시 초등학교 1학년 때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다 발을 접질려 깁스를 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업고 등하교시켰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다르지 않다.
이제 곧 차르 치아 검진일이 다가온다.
부디 치아뿐 아니라 저 신경 쓰이는 작은 상처도 별 일 아니길 바랄 뿐이다.
며칠째 눈보라가 치고 기온도 급강하했다
이 추위를 어디서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지 길고양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자동차 시동을 걸기 전에 혹시 추위를 피해 엔진룸 안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를 고양이를 위해 보닛을 탕탕 치는 일뿐이다.
저 작은 상처에도 마음이 아프지만 길고양이를 생각하면 그 생각조차 미안해진다.
길냥이들아! 이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렴.
곧 봄이 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