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가 손에 쩍쩍 붙는 겨울 아침, 일어나자마자 내복 바람으로 방문으로 달려갔다. 창호문에 아버지가 붙여 놓은 작은 유리에 얼굴을 맞대고 내다보았다.
꽁꽁 언 성에 때문에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호호 불고 손바닥이 아리도록 지그시 누르면 겨우 밖이 보일 만큼 녹는다. 작은 틈새로 내다보이는 세상은 온통 하얗다. 방문 바로 앞까지 눈이 쌓인 것만 같다.
마당은 새벽에 아버지가 내놓은 길 양쪽으로 눈벽을 이루고 있었다.
지붕에서는 큰 눈덩이가 툭툭 떨어지기도 했다.
몸까지 푹푹 들어가는 눈 위를 겅중겅중 뛰어놀아 다음날 다리에 알이 배어 엉금엉금 기었다.
강원도의 겨울은 봄님이 오실 때까지 온통 하얬다.
겨울의 눈만큼 여름이면 비도 많이 왔다.
강원도의 작은 마을 정도는 하룻밤에 잠기게 할 수 있다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리 집 마당도 점점 물이 차올랐다.
우리 가족은 어두워지기 전에 부대로 피신했다.
철조망과 군용 트럭이 있는, 온통 국방색인 부대가 우리에겐 친근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지만 우리 남매들은 신이 났다.
군용 텐트였을까? 이동식 임시 구조물이었을까?
그 밤에 모두 넓은 국방색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다.
낯선 막사 안 잠자리도 포근하기만 하고 나는 탐험을 온 것 마냥 들떴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구가 노란빛을 내다가 깜빡이기도 했다.
언니와 소곤소곤, 동생들과 깔깔대다 두두두둑 막사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발치를 뭔가가 자꾸 밟는 것 같아 잠이 깼다. 날은 아직 밝지 않아 막사 안은 어두운데 부대에서 키우는 건지 길고양이 인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발을 밟고 뛰어다녔다. 우리는 담요를 끌어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어릴 때는 고양이는 다 도둑고양이라고 해서 고양이가 무서웠다.
집에 돌아와 보니 중간까지 물에 잠겼었는지 벽에 같은 높이로 금이 그어져 있었다.
바닥은 온통 진흙투성이었고 세간살이도 흙투성이가 된 채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엄마는 한숨을 푹푹 쉬며 군인 아저씨와 가재도구와 부엌 살림살이를 씻고 물을 쫙쫙 뿌리며 청소를 하셨다.
나는 언니와 엄마를 돕다 언니만 남겨놓고 흙탕물 튀는 골목에서 해질 때까지 놀았다.
수해든 설해든 자연재해 때마다 군부대에서는 군인가족들을 서둘러 부대로 피신하게 했다. 민간인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이었다. PX에서 파는 별사탕이 들어있는 건빵도 물리도록 먹었다.
먹다가 질리면 엄마는 기름에 튀겨서 설탕을 뿌려 주셨다.
아버지의 근무 부대가 바뀔 때마다 엄마는 전방이냐 후방이냐가 관심사였다. 당연히 엄마는 후방으로 가길 원했지만 어릴 때 아버지는 주로 전방에 근무하셨다.
군부대가 많은 전방 강원도지만 반에는 군인가족이 그리 많지 않았다.
군인의 자녀가 학교에 주기적으로 가져간 것이 있었으니 그건 총 기름과 갱지였다.
총을 닦는 총기름은 학교에서 인기였다.
총기름을 마른걸레에 묻혀 한 줄로 앉아 무릎을 꿇고 빡빡 닦으면 마루 바닥은 금방 반지르르하게 윤이 났다. 교실은 기름냄새로 가득 찼지만 금방 환해졌다
-금아, 너희 언니는 어제 총기름 가져왔더라.
머리를 부풀려 귀 뒤로 동그랗게 넘긴 멋쟁이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교사를 잘 따르는 귀여운 어린이'
통신표 가정 통신란에 이렇게 쓰여 있을 정도로 나는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어린이였다.
-엄마, 선생님이 총기름 가져오래.
-아유~ 그 조갑순 샘쟁이, 또 봤구만.
엄마는 언니 담임 선생님은 착하고 얌전한데 나의 선생님은 욕심 많고 깍쟁이라고 했다.
그래서 총기름이나 갱지를 보낼 때면 꼭 똑같이 보내야 한다고 했다.
군인가족 자녀들이 있는 반 선생님들은 경쟁하듯 총기름과 갱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아무 말씀 없이 가져오시고 엄마는 뭐라 하면서도 열심히 학교로 나르셨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관심을 가져주고 예뻐해 주셔서 나는 우쭐하고 기분이 좋았다.
-엄마, 선생님이 갱지 가져오래.
-조갑순이 또 니 언니 가져가는 거 봤나 부다.
엄마는 다음날 무거운 갱지 더미를 학교에 들고 왔다.
그 갱지는 등사기로 드르르륵 등사해 우리들 시험지가 되었다.
4학년 언니는 1학년인 나보다는 더 많이 시험을 보니까 갱지가 더 많이 필요할 텐데 우리 조갑순 선생님은 언니가 가져간 날 꼭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주 만족해하셨다.
어떨 때는 한 학기만 다니고 이사를 가야 했던 우리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엄마와 아버지는 힘을 기울이신 것 같다.
'어린 시절 최초로 고통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나는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
그 답은 세월이 지나 후에 어떤 한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해가 나서 아버지가 보낸 군인 아저씨를 따라 부대로 옮기던 날, 나는 우연히 보았다.
아버지가 한 군인 아저씨 멱살을 잡고 큰 소리를 내시는 걸.
아버지는 술을 좀 드신 것 같았고 굉장히 서글퍼 보였다.
훗날 나도 아버지와 같은 서글픔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