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불러와~

막내가 태어난 날

by 모니카

어렸을 때는 온 세상이 다 똑같은 줄 알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기역니은 기와집과 초가집, 집 앞에 탐스런 배추와 무와 토마토가 자라는 넓은 밭, 밭을 지나 담장을 끼고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지나면 마을 끝에 샘이 있었다. 그 샘에는 바닥의 자갈과 모래 색깔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물에 요리조리 몸을 틀며 헤엄치는 물고기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 물고기들의 몸놀림은 어찌나 민첩한지 신발이나 소쿠리를 휘두르면 싹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곤 해서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에서 흘러나온 물은 졸졸졸 맑고 높은 소리를 내며 흘렀는데 동네 엄마들과 언니들은 물 가에 있는 크고 넓적한 돌을 하나씩 차지하고 빨래를 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끝나는 곳에는 갑자기 넓은 웅덩이가 나타났다. 웅덩이 오른쪽에는 꼭대기가 땅과 이어지는 크고 높다란 바위가 솟아 있었는데 그 바위 밑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물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고, 넘치는 물은 흘러 큰 앞개울과 만났다. 동네 언니들은 그 검푸른 물속에는 물귀신이 있어서 벌써 여러 명이 빠져 죽었다고 겁을 줬다. 나도 그 물귀신한테 다리를 잡힐뻔한 적이 있어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오싹해진다.

나는 빨래하러 가시는 외할머니를 따라 자주 그곳에 갔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돌 위에서 할머니가 주신 작은 빨래들을 조물조물 빠는 재미에 할머니가 대야를 머리에 이시면 놀다가도 따라나섰다.

그날도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가 주신 양말을 빨고 있는데 양말 한 짝이 내 손을 벗어나 쏜살같이 물을 따라갔다. 졸졸 거리고 흘렀지만 물줄기는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서 양말은 금방 저만치 가버렸다. 나는 할머니가 잡을 새도 없이 첨벙첨벙 양말을 따라갔다. 양말은 날 놀리 듯 요리조리 흘러 금방 그 깊은 물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정신없이 따라가던 내 발 하나가 붕 떴다. 순간 나는 정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넘어지며 허우적거렸던 것 같다. 다행히 물귀신한테 발이 잡히지 않아서 새파랗게 질린 채 할머니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고마우신 나의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겨울이면 차가운 내 발을 당신 허벅지 사이에 넣고 나를 꼭 안고 주무셨다.

아침마다 조그만 거울을 세워놓고 참빗으로 긴 머리를 머릿기름을 발라가며 오래오래 빗어 쪽을 지시고 은비녀를 꽂으셨다. 말이 귀하시고 어쩌다 하시는 말씀도 조용조용하셔서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했다.

예전에 궁중에서 요리를 하셨다는데 신기하고 맛있는 간식을 많이 만들어 주셨다. 밀가루 반죽을 얇고 네모지게 만들어 작은 칼집을 서너 줄 내고 안으로 꼬아서 노릇노릇 튀겨주신 예쁘고 바삭하고 고소한 과자는 잊을 수가 없다.


전남 광주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강원도 양구군 산골짝 우리 집에 오신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 출산일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그 먼 길을 한걸음에 가셔서 외할머니를 모셔왔다. 딸 둘을 낳고 술을 드시면 씨앗을 본다 어쩐다 엄마 속을 뒤집어 놓은 아버지는 내 밑으로 연달아 아들 둘을 낳자 엄마를 왕비처럼 받들었다. 엄마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을 낳고 기세등등해졌고 몸이 약해 낳네 마네 하면서도 벌써 셋째 동생 출산 날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집 뒤로는 야트막한 언덕이 끝없이 이어졌는데 그 언덕을 끼고 한참을 가면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부대가 있었다. 나는 봄에 언니를 따라 나물을 캐며 부대 근처까지 가곤 했다. 부대 입구에는 흙벽으로 둘러쌓은 위병소가 있고 위병소 앞에는 철모를 쓴 군인 아저씨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우리가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면 아저씨는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철모 속에서 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막내 남동생이 태어나는 날 언니와 나는 그 언덕길을 달음박질쳐야 했다.

아침부터 분주한 할머니는 점심시간이 지나자 동생이 태어날 거라고 방문을 꼭꼭 닫으셨다.

언니와 나는 방에서 들리는 심상치 않은 소리를 신경 쓰며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할머니의 다그치는 소리와 엄마의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자 우리는 겁이 났다.


그때였다.


아버지 데려와~ 아버지 데려와~~


엄마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언니는 내 손을 잡고 튀듯이 집을 돌아 언덕길로 올라갔다. 한 손은 꼭 잡고 한 손을 허공을 잡아당기고 네 다리로 땅을 박차며 뛰었다. 단숨에 아버지 부대에 도달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두 여자 아이는 땀에 흠뻑 젖어서 헐떡거리며 총을 들고 서 있는 아저씨께 다짜고짜 말했다.


우리 아버지 불러주세요. 엄마가 죽을지도 몰라요!


......



그때 아버지가 같이 오셨는지 나중에 오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는 무사히 셋째 아들을 출산하시고 더 자주 아프고 더 귀한 몸이 되셨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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