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신 군인아저씨

by 모니카


들에서 뛰어놀고 집에 오니 못 보던 군인아저씨가 계셨다. 국방색 야전잠바와 군복 바지 차림에 아버지 것인 듯한 흰 고무신을 신고 커다란 양철 물통을 부엌으로 나르고 있었다. 물통이 땅에 닿을랑 말랑하게 키가 작은 아저씨였는데 아저씨가 걸을 때마다 물이 찰랑찰랑 넘쳤다.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오니?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아저씨라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어딜 갔을까?


-희, 너는 맏이니까 항상 엄마 말씀 잘 듣고 동생들 잘 돌봐야 한다. 공부는 좀 못 해도 된다.


아버지는 언니에게 우리 남매가 집합했을 때뿐만 아니라 자주 언니만 따로 불러 맏이의 의무를 주입시켰다.

엄마도 안 계시니 언니는 틀림없이 동생들을 데리고 놀 거였다.

맏이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주입된 사고는 생각보다 큰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먼 훗날 오십 초반의 언니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중환자실에서 가까스로 깨어난 언니는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동생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북에서 단신 월남하신 아버지가 형제의 우애와 맏이의 책임을 강조했던 크기 만큼의, 아니 더 커다란 짐을 언니는 짊어졌고 그 짐은 무의식 속에서도 언니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나도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단신 월남이라는 말의 뜻을 다 아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하곤 했다. 형제지간엔 절대 싸우면 안 되고 콩 한쪽도 나눠 먹어야 되는 것이라고.

그것이 외로움의 대명사라는 것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아랫목에 깔아 놓은 이불로 들어가 엎드려 동화책을 폈다.



엄마는 막냇동생만 데리고 친정에 가셨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아버지가 전라도 광주까지 단숨에 가셔서 모셔 온 외할머니가 해를 넘기도록 몸조리해 주셨지만 엄마는 자꾸 아프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따뜻한 4월에 오셔서 밤이면 앞개울에 나가 목욕하던 무더운 여름을 넘기고, 광주에 있는 막내딸(막내이모) 걱정에 조용히 한숨을 쉬시며 가을을 보내고, 꽁꽁 언 물을 깨고 아침밥을 지으셔야 하는 겨울도 어느덧 힘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돌아가지 못하고 계셨다.

급기야 아버지는 엄마가 광주 큰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몸조리도 더 해야 된다고 할머니와 같이 광주로 내려가시게 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없는 집은 쓸쓸하기 그지없었지만 우리는 언니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지내야 했다.

아버지는 밥 하는 일뿐 아니라 빨래까지, 군대처럼 엄하게 호령하시는 분 답지 않게 손수 다 하셨다. 장작을 때던 집에 살 때나 연탄을 가는 집에 살 때나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두르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일찍 출근해야 하는 아버지였다.

엄마가 보고 싶고 허전하기는 하나 먹고 자는 일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대에 계시는 동안에는 군인아저씨가 오셔서 물을 길어 오시고 저녁밥을 짓고 청소까지 해 주셨다.

우리는 언니를 의지하며 아버지와 군인 아저씨가 해 주는 밥에 익숙해졌다.



엄마는 왜 자꾸 아플까?


엄마는 엄마가 아픈 게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눈을 흘겼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쩔쩔맸다.


-내가 다 낳았으면 10명도 넘었을 거야!


엄마는 자주 아버지를 쏘아보며 얘기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유산을 열명도 넘게 했다고 했다.

나도 엄마 얘기를 들어서 엄마가 자꾸 아픈 이유가 '하혈'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 유산이 뭐야?

엄마, 하혈이 뭐야?


-다 니 아버지 땜에 생기는 거야.


나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자꾸 아프니 아버지가 엄마한테 꼼짝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전라도 광주 외갓집에 가신 엄마는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전라도 광주는 강원도 양구 골짜기에 있는 나에게는 바다 건너 먼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언니가 동생들을 급하게 불러 모아서 학교 운동장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가 사진사를 보냈다고 했다.

열 살 먹은 맏이는 세 살, 여섯 살, 여덟 살 동생들의 어깨를 감싸 안고 사진을 찍었다.

엄마한테 보내진 사 남매 사진은 엄마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언니 딴에는 내 머리도 묶어주고 동생들 옷매무새도 만져주었지만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사 남매는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예상보다 일찍 돌아오셨다. 하지만 엄마 혼자가 아니고 사촌인 숙자 이모와 같이 오셨다. 말이 없고 피부가 검은 숙자 이모는 우리 집 일을 소리 없이 잘해 주었지만 나는 눈물 그렁한 이모의 눈을 여러 번 보았다.





-어우 추워!


아저씨가 손을 비비며 방으로 들어오셨다.

아저씨가 깔아 놓은 이불에 두 손을 넣자 나는 처음 보는 아저씨라 서먹서먹해서

엎드린 채 옆으로 조금 비켰다. 친한 아저씨라면 '아저씨 얼른 들어오세요. 여기가 따뜻해요!' 했을 것이다.


-뭘 보니?

.........


아저씨가 가까이 다가오며 보고 있는 책에 얼굴을 디밀었다.

그리곤 내 머리 위로 양팔을 벌려 짚고 등 위에 살짝 엎드렸다.

내 등에 점점 무게가 실렸다.


여덟 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가 갈등했다.


-아, 싫다.

근데 내가 화 내면 아저씨가 미안해할 텐데...

우리 밥도 해주는데...


그리고 말했다.


-무거워요! 아버지한테 이를 거야~


아저씨는 빠르게 바로 앉으며 말했다.


-글씨 다 읽을 줄 아니?



물론 엄마 아버지 언니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아저씨가 큰 기합을 받을 것 같았다.

우리를 위해 무거운 물을 길어 나르고 밥을 해주는 고마운 아저씨가 기분이 상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날 이후로 아저씨는 나에게 엄마보다 더 잘해주었다. 나도 아저씨한테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키가 작고 국방색 잠바, 군복 바지, 흰 고무신을 신고 무거운 물통을 들어 나르던 군인아저씨....


그가 고마운 아저씨로 남아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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