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어부들, 윌리엄 터너가 남긴 질문

어쩌면 너무 동떨어진 생각일지도 모르는 이야기

by 평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는 자연을 자신의 눈으로 관찰해 날씨와 물,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섬세함을 포착한 능력으로 유명하며 ‘빛의 화가’라 불린다. 그는 특히 ‘바다’를 사랑했는데, 남긴 유작의 3분의 2가 바다 그림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중〈바다의 어부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금방이라도 전복될 듯한 작은 배 한 척, 그리고 달빛에 의지해 생사의 경계에 선 어부들이 그려져 있었다. 배 위의 등불과 달빛이 없다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숨소리만 들으며 공포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림이 워낙 어두워 어부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기울어진 배가 전하는 긴장감만으로도 상황의 위태로움이 생생히 전해진다.


아마도 윌리엄 터너는 그림을 통해 아무리 거친 풍랑이 불어와도 그 속에서 한 줄기의 빛-달빛이나 등불을 통해-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빛의 화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빛과 어둠의 대조된 색감이 잘 표현된 작품인 것 같고, 그림으로부터 생생한 바다 위의 긴장이 느껴진다.

바다의 어부들, 위리엄 터너, 1796년

위의 그림을 보며 윌리엄 터너가 의도했을 메시지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위로가 필요할 때 바다를 찾는다. 광활하게 펼쳐지는 대지처럼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도 잔잔해진다. 그러나 터너의 그림을 보니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인데도, 윤택한 삶을 위해 바다를 끝없이 훼손하고 있다. 바닷가에 남겨진 쓰레기는 그대로 해양으로 흘러들고, 무분별한 남획은 바다 자원을 고갈시키며, 해양 생물의 터전과 생명을 위협한다. 바다는 태양의 열을 흡수하고 분배해 지구의 열 흐름을 조절하며, 식물성 플랑크톤은 대량의 산소를 생산한다. 또한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어업과 자원 개발의 경제적 가치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다를 ‘레저를 위한 놀이터’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가족은 종종 강릉으로 바다를 보러 간다. 고운 모래사장을 걷고, 조개를 줍고, 잠시 발을 담그며 더위를 잊는다.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을 바라보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세상 근심이 사라지는 듯하다. 그러나 바다가 내 곁에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잊기 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혼자서는 지구 위에 존재할 수 없다.


터너의 한 점 그림, 〈바다 위의 어부>가 내 생각을 멀리까지 이끌었다. 누군가 내 삶의 터전을 위협한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맞서 싸울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와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의 터전을 지키는 일도 결국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나와 직접 관련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는 대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부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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