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마이

내게 감사한 물건이야기

by 평화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꼽으라면, 단연 음악이 나오는 기기들이다. 중학생 때는 마이마이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 고등학생 때는 엄마가 선물해주신 콤팩트 플레이어가 늘 곁에 있었다. 좁은 내 방 한편에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자기 전에 좋아하는 노래를 틀거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던 시간을 즐겼다. 또 좋아하는 가수의 새 음반이 나오면 동네 음반 가게로 달려가 카세트테이프를 샀고, 신승훈, 김건모, 듀스, 솔리드, 터보, 서태지와 아이들, 서지원, 이승환, DJ DOC, 쿨 등 수많은 가수의 테이프를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중학교 3학년쯤 CD 플레이어가 유행하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CD로 갈아탔지만, 나는 여전히 마이마이를 고집했다.
달칵 소리와 함께 A면이 끝나면 테이프를 꺼내 B면으로 돌려 넣던 그 순간의 감각이 좋았다. 카세트테이프만이 가진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손맛이 있었다.

나의 청소년기는 시와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를 쓰고 음악을 듣는 일은 혼란스럽고 어두웠던 사춘기의 마음을 달래주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시와 음악을 사랑하던 엄마의 영향이 컸다. 집 안 곳곳에는 윤동주, 피천득의 시집과 수필집이 꽂혀 있었고, 엄마는 집안일하실 때마다 노사연, 최백호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셨다. 돌이켜보면, 콤팩트 플레이어(본체와 앰프가 두 개 달린)는 당시로서는 꽤 값비싼 장비였을 텐데도 딸을 위해 선뜻 내 방에 놓아주셨던 그 마음이 여전히 고맙다.

몇 해 전, 친정집 서랍에서 내가 쓰던 마이마이를 다시 발견했다. 오래된 물건도 잘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보관하시는 엄마 덕분에 흠 하나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플레이 버튼을 눌러보지는 않았지만, 귓가에는 이미 노래가 흐르는 듯했다. 1999년 겨울, 이어폰을 꽂은 채 등굣길을 걷던 내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르며 ‘이게 바로 추억이구나’ 싶었다. 좋아했던 물건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느낄 수 있는 기쁨이었다. 조만간 친정집에 가서 마이마이를 가져와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줘야겠다. 지금이야 멜론, 애플뮤직 등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그때는 이렇게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음악이 나오는 기계일지 모르지만, 내게 그것은 음악보다 마음을 전해준 물건이다. 엄마가 내 방 협탁 위에 조심스레 놓아주었던 그 마음, 혼자였던 사춘기를 함께 견뎌준 친구 같은 존재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는 사라지지 않는 온기가 남아있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떤 마음을 남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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