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처럼

자연 속에서 느끼는 감사

by 평화

도보로 출근을 하는 날이면 반드시 지나치는 길이 있다. 줄지어 선 은행나무가 황금빛 터널을 이루는 길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노란 옷을 입은 나무들이 등을 밝힌 듯 환하게 빛나고, 바람이 스치면 낙엽이 비처럼 흩날린다. 어느새 초록이 노란색으로 물든 계절의 속도에 새삼 놀라곤 한다. 은행나무를 통해 가을을 느끼는 일은 늘 즐겁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는 쉽지 않다. 떨어진 은행 열매 때문이다.

나무 주변에는 겨자색 열매가 우박처럼 흩어져 있다. 마치 녹지 않는 노란 우박 같다. 나는 은행열매를 ‘폭탄’이라고 부른다. 한 번 잘못 밟기라도 하면 특유의 냄새가 발바닥에 들러붙어 하루 내내 코끝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껍질을 벗겨 구워 먹으면 고소하기 그지없는 열매가 어째서 그토록 고약한 냄새를 내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길을 걸을 때면 자연스레 폭탄을 피해 징검다리를 건너듯 조심조심 발을 옮기게 되는데, 누군가 내 뒷모습을 본다면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동료들과 함께 둘레길을 걸었다. 호수를 감싸는 길을 지나면 어느 대학의 캠퍼스로 이어지는데, 이곳 역시 지역의 대표적인 은행나무 명소다.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길게 뻗은 은행나무길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진을 찍으려는 가족, 연인, 전문 사진가가 삼삼오오 모여 있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는 벌써 도톰한 패딩 차림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자연 앞에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호수길을 걸으며 찬 바람에 굳은 몸을 녹이기 위해 카페에 들러 라테 한 잔씩을 시켰다. 따뜻한 커피를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시 걸음을 재촉해 둘레길로 들어서자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이 한층 또렷하다. 중간 지점쯤에 놓인 누각에 올라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니, 수면 위에 비친 구름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지고 햇빛을 받은 윤슬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자연은 늘 우리 곁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올해는 가을 산을 못 갔네.’ 하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가까운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풍요로운 계절을 마주할 수 있으니, 자연이 선물처럼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그 기쁨은 더욱 커진다.

곧 겨울이 다가와 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구더라도, 사계절 내내 한자리를 지키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들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든든히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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