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씰을 보며 든 생각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방학 숙제로 늘 하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수집’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모으는 걸 좋아했다. 껌종이, 우표, 크리스마스 씰까지.
우표는 막내 고모가 모으던 것을 물려받아 이어서 모았고, 껌종이는 마트에 파는 껌이란 껌은 거의 다 사 먹으며 모았다. 풍선껌부터 어른들이 즐겨 먹던 후라보노까지, 덕분에 안 먹어본 껌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결핵 환자를 돕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샀다. 한 세트에 열두 장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해마다 디자인이 달라지는 씰을 모으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수집 습관은 여전하다. 각종 리플릿과 자료집, 옷에 달린 태그까지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둔다. 제법 단단한 옷 태그에는 구멍에 얇은 리본이나 노끈을 끼워 책갈피로 만들어 쓴다. 여기저기 책갈피를 꽂아두고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책갈피는 많을수록 좋다.
또 하나, 어른이 되어 새로 생긴 수집품은 마그넷이다. 여행을 가면 그 도시나 나라를 상징하는 마그넷을 하나씩 사 온다. 집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마그넷들은 우리 가족이 함께 쌓아온 시간의 흔적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그래서인지 이 많은 수집품 중에서도 유독 크리스마스 씰이 떠올랐다. 수집책을 꺼내 보니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모아둔 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득 크리스마스 씰은 왜 만들어졌을까 궁금해졌다.
인터넷 창에 ‘크리스마스 씰’을 검색하니 기부스토어 홈페이지가 나온다. 씰의 시작은 19세기말,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결핵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한다. 그는 크리스마스 우편물에 동전 한 닢 자리의 ‘씰’을 붙여 보내면, 그 판매금으로 결핵 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국왕의 지원을 받아 1904년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었다. 그 작은 씰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나눔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캐나다 선교사 셔우드 홀에 의해 크리스마스 씰 모금운동이 시작되었다. 광복 이후 셔우드 홀과 문창모 박사에 의해 다시 전개되었고,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비로소 범국민적 모금 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씰이 이렇게 선한 마음에서 시작되어, 오랜 시간을 거쳐 전 세계적인 모금 운동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남는다.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모으던 내가 조금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그저 수집이 좋아서 샀던 씰이 결핵 진료와 연구개발, 환자 지원에 쓰였다니,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수집이 있을까.
지금도 나는 소액이지만 아홉 개의 단체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그 기금은 단체의 운영과 목적 사업에 사용된다. 특히 첫째 아이 이름으로 굿네이버스에 십 년 넘게 후원을 이어오고 있는데, 기관에서 보내오는 감사 문자나 정기간행물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참 기쁘다. 내가 보탠 적은 금액이 누군가에게는 꿈을 펼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오래 후원을 이어오느냐고 묻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대신해 주는 곳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씰을 붙이며 품었던 마음은 그저 ‘모으는 즐거움’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씰들이 모여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고, 내일을 이어주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나눔을 연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집책 속에 고이 눌러 담아두었던 크리스마스 씰 한 장. 그 안에는 계절을 지나 자란 마음 하나가 아직도 반짝이고 있다. 어린 날의 내가 건넨 그 조심스러운 온기가,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