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또 곁에 걷는 길동무처럼.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끄는 일을 우리는 흔히 ‘지도하다’라고 부른다.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과 기술을 전달한다. 지식을 가르치고 학생이 그 답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를 시험과 평가로 확인한다. 교육적인 의도를 가진 이 과정을 보통 ‘티칭’이라고 한다.
반면, 청소년지도사는 ‘티칭’보다는 ‘코칭’에 가까운 일을 한다.
청소년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드러날 수 있도록 옆에서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다.
획일적인 지식을 알려주고 같은 답을 향해 가게 하기보다는, 각자 다른 방향 속에서 자신의 끼와 재능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앞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걷는 길동무에 가깝다.
청소년을 지도할 때 성과는 아이들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아이에게는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성과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아이에게는 목표를 이룬 결과물이 성과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는 성장이다.
아마 티칭과 가장 큰 차이는 배움의 결과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교육 현장에도 코칭은 존재할 것이다. 다만, 교과 진도와 입시라는 목표가 분명한 학교 구조 안에서, 한 명의 교사가 다수의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재능을 충분히 발견하고 발현시키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청소년지도사라는 직업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학교 밖에서 보다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청소년수련관을 찾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곳에 온다.
청소년동아리활동, 청소년자치활동, 문화예술활동, 평생교육강좌, 체육활동 등 다양한 영역 중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한다. 의무적인 배움이 아니라 주체적인 활동이 중심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음껏 해보고,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아 다시 실험한다.
이 과정은 청소년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또래 관계에서 생긴 어려움을 버텨낼 수 있는 무언가가 하나쯤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학교 밖 기관에서 만난 어른과 또래 관계 안에서 풀리는 경우를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한 중학생 청소년이 있었다. 학교에서 친하던 친구와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혼자 지내게 되었고, 기댈 사람도 장소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우리 기관의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또래 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이가 다른 동생, 친구, 오빠, 언니들과 어울리며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했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주말이면 빠짐없이 수련관에 나와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의 외로움은 더 이상 전부가 아니었다.
이런 청소년이 눈에 밟히면, 청소년지도사는 어떻게든 손을 내민다.
덜 상처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청소년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워 불러주고, 안부를 묻는다.
우리가 하는 인사와 격려에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을까.
밤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할 때, 길을 밝혀주는 등대를 떠올려본다.
아주 오래전에는 별빛과 달빛에 의지해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하지만 등대가 생긴 이후, 배는 훨씬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기는 복잡하다. 감정은 이유 없이 요동치고,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해 거칠어지기도 한다. 부모나 친구와 나눌 수 없는 고민이 생기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잦다.
그럴 때 찾을 수 있는 어른. 바로 청소년지도사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청소년의 마음에 작은 빛을 비추는 사람. 그 빛으로 삶이 아주 조금이라도 밝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대로 청소년지도사는 청소년이 있기에 존재한다. 청소년이 없다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직업일 것이다.
“저도 청소년지도사가 되려고요.”
청소년으로 만났던 아이가 그렇게 말할 때, 그리고 언젠가 현장에서 동료로 다시 만날 때,
이 일의 보람은 몇 배가 된다.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은 참 많다. 그리고 그 모든 직업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청소년의 성장 과정 속에서 긍정적이고 행복한 상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명쯤은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을 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청소년지도사가 주말과 휴일에도 당직을 서며 아이들의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여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