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

오래 기억하게 되는 이름이 있다

by 평화

청소년기관에서 일하며 맡아온 여러 업무 중, 현장실습 지도는 늘 조금 특별한 자리로 남는다. 실습생을 맞이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현장실습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시간이기 이전에,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씩, 20일. 총 160시간을 함께할 실습생을 위해 실습계획서를 꼼꼼히 정리하고,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슈퍼바이저 역시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것,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실습생에게는 꼭 전해주고 싶은 것, 현장에서 부딪히며 얻은 경험과 제도 안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들까지. 실습은 늘 ‘전달’이 아니라 ‘함께 채워가는 시간’에 가깝다.

처음에는 언제 끝나나 싶던 160시간도, 실습생과 일상의 리듬을 맞추며 지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날을 향해 가 있다. 끝인사를 나누는 날이 다가올수록 묘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 6년간 실습을 진행하며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실습생마다 진로가 다르고, 실습의 이유도 달랐다. 그래서 실습은 늘 같은 방식일 수 없었다. 각자가 궁금해하는 지점, 꼭 알고 싶어 하는 영역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실습을 구성해 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는 배움도 적지 않았다.


코로나가 서서히 끝나가던 2022년 여름, 청소년지도사 현장실습으로 만난 한 친구가 있다.

똘똘하고 차분했던 첫인상처럼 실습 기간 내내 성실한 태도로 임했던 실습생이었다. 당시 방학 시즌을 맞아 기관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었고, 코로나로 멈췄던 대면 활동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던 시기였다. 해야 할 일도, 감당해야 할 역할도 많았지만 실습생이었던 그녀는 보조지도자로서 맡은 몫을 묵묵히 해냈다.

그래서였을까. 실습이 끝난 뒤에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이던 시기, 기관에서 매년 크게 진행하는 청소년축제에 봉사자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부르시면 가야죠.”라며 흔쾌히 응한 그녀는, 어느새 한 팀의 팀장이 되어 있었다. 책임감 있게 팀을 이끌고, 축제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또렷하게 해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고민을 나누기도 했고, 결국 청소년 활동 현장에서 지도사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지도자와 실습생으로 만났던 관계가, 어느새 동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어 아쉬움은 남았지만, 현장을 이해하는 동료가 한 명 더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얼마 전에는 꼭 밥 한 끼 사고 싶었다며 먼저 연락해 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내가 더 위로를 받는 시간이었다. 내 고민을 담담히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 주는 그의 모습에서 시간의 흐름과 성장을 느꼈다.


일을 하다 보면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이름들이 있다.

실습이라는, 어쩌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관계가 시간이 지나도 이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뜨거웠던 여름, 진심을 다해 실습에 임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관계였다고 믿는다.


지금도 나는 내 자리에서 청소년을 만나고, 그 친구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언젠가 그 친구 역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되기를, 그 청소년의 삶에 작은 이정표 같은 순간으로 남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실습은 끝났지만, 우리의 관계는 남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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