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관계가 주는 온기
근래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있다. 배우 이준호를 좋아해 보기 시작한 〈태풍상사〉다.
이야기는 한 남자가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던 삶, 압구정 오렌지족으로 불리던 시절을 지나 IMF와 함께 아버지의 회사가 무너지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인생은 예고 없이 방향을 바꾼다.
주인공 강태풍은 무너진 회사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평생 경험해 본 적 없는 직원의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고난이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그가 끝내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함께 지켜온 직원들이 다시 모여 힘을 보태고, 태풍상사는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꾼다.
이 드라마가 오래 남았던 이유는 성공이나 재기의 서사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끝내 곁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배신과 상처가 스쳐 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관계가 주는 에너지는 어떤 시련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되어 주었다.
문득 나의 하루가 떠올랐다. 하루 여덟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무실 사람들. 성격도, 일하는 방식도, 취향도, 나이도 모두 다르다. 20년, 30년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가 100% 잘 맞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의 특성상 개인의 업무를 넘어 서로를 도와야 할 순간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의 역량은 바로 그런 순간에 빛난다.
올해는 특히 새로운 시도가 많아 유난히 분주했다. 신규 사업이 크게 늘어나면서 전년도보다 프로그램을 쉼 없이 준비해야 했다. 돌아서면 일이었고, 또 돌아서면 일이었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면 적합성과 효과를 따지는 일부터 홍보와 모집, 보호자 연락, 간식 준비, 강사 섭외, 서류 정리와 정산까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경험이 있어도 벅찬 순간들이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사람’의 존재는 더욱 선명해졌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놓친 부분을 채워 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손을 내미는 팀원들 덕분에 처음 시도한 프로그램도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음이 흔들릴 듯한 날에는 “너무 잘하고 있어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교류는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려는 태도와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조직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지시보다 제안이 자연스럽고, 비판보다 대안이 먼저 말해지는 문화. 직책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사람의 서열이 되지 않고, 각자의 역할로 존중받는 일터.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과 ‘관계’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닫는다. 결국 인생의 크고 작은 파도를 버텨내게 하는 힘도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태풍 같은 시련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 태풍상사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동료들에게 기대고 또 누군가의 기댈 어깨가 되며 많은 순간을 건너왔다.
얼마 전, 퇴사의 문턱에서 다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동료들 덕이었다.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선택이 쉽지 않았다. ‘퇴사’라는 단어가 입에 오를 때마다 마음이 먼저 반응해 눈물이 차올랐다.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마음이 다치는 순간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결국 나를 붙잡아 준 것도 사람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마음의 결이 잘 맞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조용히 기대해 본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