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에서 출발점으로 도착하다
들려주소서 무사(mousai)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 이야기를 그는 수많은 도시를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귀향시키려다 마음속으로 숱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과거 영화 촬영 전 스태프들이 돼지 머리에 돈을 꽂고 고사를 지내는 것처럼, 글과 삶에 있어서는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인이더라도 그녀에게 간청할 도리밖에 없다.
대다수 이 시기에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나는 거슬러 올라가 보려 한다. 이미 종착지에 서있기에 시작점으로 가는 여정 말이다.
오디세우스가 이런 사례의 대표 예시로 꼽힌다. 오디세우스는 고난을 겪고 염원하던 고향 땅을 밟기까지 20년이 걸렸다. 그는 그 과정에서 운명의 파도에 휩쓸려 지쳐 허덕였다. 최고의 모략으로 궁리를 거듭해 올가미를 빠져나와도 언제나 각종 괴물과 시련이 그를 환대했다. 고행길의 배후에는 대부분 아테나의 장난이 있었다. 그녀가 각본을 짜면 오디세우스는 무력하게도 강풍을 맞은 풍량계처럼 그 방향으로 삐걱거릴 뿐이었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꿈은 수십 년간 좌절된 것이다. 우선 그는 칼립소 여신에게 사로잡혀 섬에 유배돼 그녀와의 7-8년의 애증의 세월을 파고 속에 짐짓 흘러 보냈고, 싸이클롭스를 만나 도망쳤으며, 세이렌의 마수에 걸려 동료를 떠나보냈다. 은둔한 아킬레우스를 전장으로 꾀어내 반강제적으로 스카우트하면서 트로이를 함락이라는 과업을 달성했으나 집으로 가기까지 도망치듯 빠져 달아난 여러 뒷걸음질. 목적지에서 출발해 시작점으로 당도하는 퇴보. 끝의 시작이다.
<오디세이아>의 도입부를 살펴보면, 수 개의 챕터가 진행되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일리아드 속 전개되는 아킬레우스 영웅담과 짐짓 대조된다. <오디세이아>의 도입부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를 주축으로 이타카 섬에서 전개되는데, 이곳에서도 온 가족을 괴롭히는 아테나의 개입은 멈출 생각이 없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부재로 방황하는 텔레마코스를 독려하고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고자 그가 신임하는 스승인 멘토(실제 이름이 멘토다. 요새 일컫는 멘토라는 의미가 여기서 왔다.)의 모습으로 등장한 아테나를 예시로 들며 이를 정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테나는 잔혹한 여신이라는 점이다. 아테나는 메두사가 살았을 때는 그녀의 고통 겪는 신음소리를 조롱하는 피리를 만들어 불어댔으며, 머리를 뱀으로 만들었다. 죽어서도 메두사의 수난은 이어진다. 괴물이 된 그녀의 목을 자른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아테나는 방패에 그녀의 머리를 붙여 무기로 제작하도록 지시한다. 이때 떨어진 메두사의 목에서 페가수스가 태어난다. 이 같은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페가수스는 보통 무사 여신들과 지내면서 영웅과 신들을 찬양하는 일을 하는데, 아테나는 그 잔인함을 영웅찬양의 신성함으로 덧씌운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꾀 많고 사리에 밝은 오디세우스라도 이 지혜의 여신에게 지략으로 감당할 수 없는 법이다. 사실 지능의 발전과 기만은 높은 연관성을 띤다. 지능이 향상할수록 단순한 오류나 실수를 넘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전략적 기만이 가능해진다. 이는 게임, 경제, 협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된다. 초창기 chat gpt의 고질적 문제를 상기해 보면 어렵지 않게 그 문제점이 드러날 것이다. 또 니체는 (내 기억으로 유고노트인 것 같은데 어느 서적인지 분명하지 않다.) 인간이 타자를 속이는 방식으로 지능을 발달시켰다고 설명했고, 현대 진화생물학도 이런 주장에 대해 별다른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제는 텔레마코스와 오디세우스 그리고 페넬로페의 운명을 아테네가 쥐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성향과 기호에 따라 오디세우스의 수난은 늘고 줄어든다.
이 대목에서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를 잠시 불러보자. 라틴어인 포르투나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처럼 여성형 명사로 쓰인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여러 덕목과 자질을 설명하면서, 정복자로서 이 운명의 여신의 머리채를 움켜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메두사 일화를 빗대면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이 뜻을 세우더라도 이를 주관하는 것은 인간의 손 너머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 인생은 오롯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나의 삶은 그녀 손에 이리저리 휘적여져 진창으로 굴려지는 다면체 주사위다. 어쩌면 들이닥친 풍랑에도 불어 터진 나무주걱으로만 잠긴 물 퍼내며, 녹슨 대갈못조차 갈아 끼우지 못한 채 항해하는 신세와 다름없다. 생의 의지는 넘치나 그 여신의 더 큰 힘의 의지 앞에 바스러질 뿐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사도 바울도 오디세우스처럼 끝에서 출발했다. 로마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엘리트 층에서 기독교인을 박해하다 예수의 환상을 보고 그 말씀을 전파하며 사도가 된다. 환상을 본 뒤 그 인생이 전복된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의 말처럼 이제부터 여기는 더 이상 캔자스 시티가 아닌 것이다.
바울에 대해서는 여러 신학적 논쟁이 있다. 우선 니체는 그가 복음을 그리스 철학과 결탁시켜 로고스화 했다고 꼬집고, 일부 신학자들도 이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의 입맛에 따라 윤색했다는 방식의 주장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할 자리가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선 예외로 한다.)
이 두 명은 활동했던 지역도 유사하다. 주로 에게해와 지중해를 두고 발칸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터키를 누볐다. 이 믿음의 사람은 오디세우스처럼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못해도 7~8년가량 전도 여행을 펼쳤다. 동료들과 갈라서고, 군중에게 돌을 맞고, 수차례 그의 배가 파선했다. 그러면서 소아시아, 데살로니가, 고린도, 마게도냐 등 기독교의 초석을 세웠다. 이 둘은 지혜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 초창기 교회 공동체의 갈등을 중재하고 결속력을 다졌다. 트로이 함락과 복음전파. 하나의 목적으로 황소처럼 달렸다.
바울은 3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에서 효율적 경유지를 탐구하며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대로 실현되지 않고 의외의 지역에서 선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왜 이곳으로 보내지 않고 저곳으로 보내나이까'라는 방식의 기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두 남자의 결말은 큰 차이를 보인다. 다행히도 오디세우스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발로 유대 총독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이후 처형됐다.
이들의 결말에 이목을 집중하는 대신 그들이 각자 삶에서 생의 종착지를 거쳐 수난을 겪고 시작점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에 주목하려 한다. 트로이를 함락 끝에, 신에게로의 회심 끝에 결국 찾아갔던 자신의 마음 말이다. 이것은 오디세우스에게는 아내와 고향이었으며, 바울에게는 복음이었다. 나는 다시 출발선으로 회귀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