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소녀

by 양묘

푸르른 숲의 품 안, 조용히 숨 쉬는 호수가 있었다.
그곳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한 발짝 비켜선 고요였다.
그 고요의 가장자리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저 맑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없이, 반복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흐름마저 의미를 잃은 채, 소녀의 시간은 거기에서 멈춰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그렇게 거울처럼 맑은 호수를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무너지지 않으려는 듯.
그렇게 계속,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요한 물이라도
영원히 정지된 채로 있을 순 없는 법.
바람 한 점이 물결을 일으켰고, 그 작은 파문은 소녀가 들여다보던 얼굴을 흩트려 놓았다.

흐려진 모습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소녀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자신이 머물러 있던 이 세계가 얼마나 찬란한지를.
햇빛을 머금은 나뭇잎은 바람에 속삭이고, 푸른 하늘은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주하던 그 호수조차 더 이상 거울이 아닌, 한 폭의 풍경으로 다가왔다.

소녀는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낯선 숲은 처음엔 그녀를 반기지 않았다.
사슴은 그녀의 기척에 놀라 숲 속으로 사라졌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간 숲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미지의 감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소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곳에는 따뜻한 풀내음이 있었고, 낮은 가지 위에서 노래하던 새들이 있었으며,
작은 생명들이 바삐 움직이며 숨 쉬는 진짜 세상이 있었다.

그녀는 넘어지고, 상처 나고, 그러다 나무 열매의 단맛에 웃음을 터뜨렸다.
털북숭이 동물의 옆구리에 기대어 졸다 햇살에 눈을 뜨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소녀는 다시 호수로 돌아왔다.
예전과 같이, 조용히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번엔…
그 얼굴엔 흙이 묻고, 머리는 엉켜 있었고,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웃었다.
작은 미소였지만, 그 속엔 과거의 자신에게 없던 생기가 담겨 있었다.

이젠, 호수는 더 이상 자신을 가두는 거울이 아니었다.

그건 단지, 잠시 숨 고르기에 좋은 조용한 쉼터일 뿐.

그리고 그녀는, 다시 숲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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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호수(자아), 파문(변화), 숲(세상), 사슴(관계/기회), 요정(삶의 이끄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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