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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영 Jan 11. 2023

나는 스스로 플랫폼이 되기로 했다.


#1. 정류장

 움직이는 버스 들은 항상 거치는 장소가 있다. 그곳엔 사람들이 거닌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기에 지나치는 장소이자 돌아가기 위한 공간이다. 그곳에는 관계가 있다. 바랬든 바라지 않았든 모두가 그 시간에는 그 장소에 있었다. 그럼 보이지 않는 선이 형성되곤 한다. 누구나가 있었고 누군가가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거쳐가는 장소가 있다면 그러한 사람도 있다. 특별해서가 아닌 그렇다고 특이해서도 아닌 가장 보통의 편안한 느낌을 그러한 향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그리고 약간씩 졸려오는 때로는 감싸 안기는 것만 같은 향기 말이다.


 정류장에는 비밀이 없다. 누구든지 말할 수 있고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혹여 듣게 되더라도 그 이야기 또한 그곳에 머문다. 새어 나가지 않는다.



#2. 기린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알파벳을 먼저 땐다. 저마다의 알파벳에는 연상되는 제일 배우기 쉬운 단어로, 기억 속에 남는다. A는 보통 apple, B는 banana 그리고 G는 보통 giraffe. 기린이다. 물론 다른 단어로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분명한 것은 기린이란 단어는 그만큼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인 것이다.


 기린은 어떻게 보면 보편적이지만, 막상 대면하게 되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에 뿔이 달린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지만, 목이 5m가 넘는 기린은 존재한다. 막상 상상하려 했을 때 뭐가 더 비현실적일까. 답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친숙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은 복합적이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차가운 이미지로, 또 다른 이에게는 가벼운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 사람에게 기대했던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맞지 않을 때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3. 플랫폼


 모두가 머무르고, 다양함을 포용하는 플랫폼이 있다. 수만 가지 색깔의 감정들이 이어져 있고, 누구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중요하지 않고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문 턱이 없다. 가로막는 선도 없다. 거침이 없을 때도 있다. 그것마저도 포용한다.


 내가 아는 세계는 생각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매우 크고 장엄했다. 하지만 가끔씩 나의 삶에 치이고 치이다 보면 가장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모순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고 나의 경험만이 진짜가 되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세상에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다. 저마다의 가지에 달린 열매는 그 자체로 공존하게 된다. 존재함이란 그런 것이다.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지 내가 보고 있든 내가 보지 못하고 있든지, 어쨌거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플랫폼이 되려 한다. 내가 가졌던 너그럽지 못했던 시각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마중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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