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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May 08. 2024

생쥐를 닮은 고양이를 입양했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첫 만남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약에 적응하지 못하는(어지럼증과 울렁거림) 내게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워보는 걸 권했다. 누구 장모님이 강아지를 입양하고 많이 나아지셨다더라, 어머니가 고양이를 입양하고 약을 끊었다더라 등 누가 누가 카더라 식의 처방들이 난무했다. 

그 이야기가 나를 솔깃하게 하지 못한 것은 애완동물의 달콤함과 쓴 맛을 동시에 본 경험자로서 섣불리 다시 그 길로 들어서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하나 감당도 못 하는 인간이 다른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오만한 태도가 아닐까.


그러나 인생이란 늘 그렇듯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선생님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100% 효과라는 건 없어요. 그런데 좋은 결과치를 얻은 논문들이 몇 편 있기는 해요. 애완동물이 우울증과 불안의 원인인 고립감과 외로움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있어요. 더불어 스트레스도 줄여준다고 하고요. 그래도 과신하지는 마세요. 길러보시게요? "


"모르겠어요."



고양이를 길러보라 권했던 건 여동생이었다. 고양이 임보 활동을 했던 여동생은 고양이와 성향이 잘 맞는다면서 평생 한 번도 길러본 적 없는 고양이를 길러보라고 권했다. 고양이라면 막연한 공포가 있던 터라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가족 누구도 고양이 알레르기가 없었고, (고양이를 기를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아보길) 고양이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보러 갈까? 보고 결정하지 뭐 하는 무모한 판단을 했다. 돌이켜보면 조금 준비를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드는 부분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뭔가 확고한 생각 없이 나간 거라 몇 입양 기관도 보고 고양이 분양 업체도 가보자는 식이었지만 코로나로 문 닫은 경우가 많아 다 헛걸음이었다. 그리고 많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마지막 들른 곳이 제리를 만난 그곳이다.


투명한 유리 속 각 방. 다양한 종류에 새끼 고양이부터 성묘까지 모여 있었다. 

그중 가장 작은 고양이. 태어난 지 고작 두 달. 가정 위탁 고양이.


 "안아보시겠어요?" 


그 말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들렸다. 안아보면 데려가지 않고는 못 견딜 거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너무 작아서 내 손 안에서 깨져버릴 것만 같아 조심조심. 작은 생쥐만 한 고양이였다. 그렇게 너를 다시 건네는데 가슴 한편이 욱신해지는 느낌.  난 망설였다. 진열장만 멍하니 보다가 돌아서려는


그 순간 조금 덜 닫힌 문을 밀고 탈출을 시도한 너. 내 쪽을 바라보고 걸어오는 너.




운명인가?! 널 두고 나올 자신이 없었다.

그 작은 몸으로 넌 용기를 내 나를 선택해 주었는데, 그건 예의가 아닌 느낌이었다.

이상한 핑계라도 상관없다. 너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망설이는 감정을 압도해 버렸다.


작은 종이 상자에 두부모래가 든 플라스틱 화장실, 사료가 담긴 작은 지퍼팩, 급식통, 핑크색 공.

그리도 단출한 짐, 작고 소중한 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를 기른다는 일에 대해 어떤 기초 지식도 없이 데려오다 보니 

집에 도착하고서야 집이 너에게 굉장히 위험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실 바닥에 급히 카펫을 깔아 두고 소파에서 뛰어내리다 다칠까 방석을 겹쳐 계단을 만들었다. 

작다 보니 없어지면 찾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너는 안마의자 손걸이 올라가지를 않나, 싱크대 밑 공간에 숨어들어 진땀을 빼게 하질 않나. 소리 없이 내 뒤를 따라오다 밟히질 않나.

모든 일이 긴장에 연속이었다.


한 번은 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내는 사이 세탁실에 숨어들었다.

그걸 알 길이 없었기에 하루종일 찾다가 결국 울음이 터졌다. 

내 울음 뒤에 미세하게 우는 소리가 겹쳤다. 그 소리는 세탁실에서 들렸다.

세탁실은 방음문이라 웬만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데 자기도 살려고 살아보려고 어찌나 크게 울었는지

문을 열어보니 드럼 세탁기 안에 들어가 있는 거였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조심성이 부족한 내가 빨래부터 던지고 세탁기를 돌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었다.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는 집이라는 거대한 정글을 만난 셈이었다.

덕분에 약 부작용으로 누워만 있던 일상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너에게서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기에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하루가 갔다. 운동은 자동 옵션이었다.





고양이가 오고 

아이들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평소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매라 그런지 둘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보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오고는 거실에 나와 온 가족이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이 이어졌다.

별 것도 아닌 너의 행동 하나하나에 웃는 가족들, 덕분에 제법 화목해 보이는 가족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의 화두는 고양이 이름 짓기였다.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고, 고집이 센 스타일들이라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국은 내 맘대로 지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슬프게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은 아직도 제 각각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먼지라든가 백호라든가 하는 이름들.


근데 왜? 고양이한테 생쥐 이름을 붙였어요?


동물 병원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이름을 짓는 첫 이유는 동물 병원 차트를 위한 것이니까. 예방 접종을 받으면서도 제리는 어찌나 얌전한 지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냥 생쥐처럼 생겨서요."라고 대답했지만, 딱히 거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만화 <톰과 제리>의 그 제리가 맞다. 

사실 톰이 고양이이고 제리가 생쥐다.

이 만화를 본 사람라면 누구나 늘 당하기만 하는 톰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제리 너무 짜증 난다는 이들이 많았다.

나도 이 만화를 보면서 늘 제리가 얄밉게 느껴지고는 했다.

그런데 깊숙이 들여다보면 제리에게 이 상황은 목숨이 달린 상황이다. 제리는 생쥐이기에 톰의 먹이인 것이다. 다행하게도 톰에게는 이 싸움의 승패가 목숨이 달린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진다고 해도 애만 먹는 결말인 것이다. 제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이니 제리가 진다면 만화는 엔딩을 맞아야 한다. 심지어 새드엔딩.

나는 제리가 영특하게 어수룩한 톰의 덫을 벗어나 승리하는 면모가 맘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영특하게 매번 승리하는 제리처럼 우리 고양이와 내가 오래오래 승리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종족을 거스르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변명을 해본다.





제리는 이름을 부르는 몇 시간 만에 제 이름을 알아들었다. 제법 똑똑한 고양이다. 결국 어디 숨어 있어도 이름을 알아듣기 시작하고부터는 대답을 하기에 숨바꼭질의 결말이 울음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좀 크고는 불러도 잘 오지 않는다. 사춘기인가? 눈만 깜박이며 움직이지 않는다. 너 이 녀석. 이 사랑스러운 녀석.




남편이 만든 강제 얼짱 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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