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숙집 고양이 May 15. 2024

먹으면 안 되는 걸 먹어버렸다

꽃을 먹는 고양이

꽃 향기 맡는 척하는 제리

제리는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도 다행히도 얌전한 편이라 확 건드리기보다는 뭔가 서서히 행하는 쪽이다. (이 편이 더 무섭기는 하다) 예를 들면 장난감을 보여줘도 바로 달려오지 않고 조금 뜸을 들이는 식이다. 사냥놀이도 신중함이 많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보통 어딘가 숨어있다가 기습을 하는 형태다. 그러기에 놀이를 해주는 쪽의 인내심을 요한다. 좋은 먹잇감을 한도 끝도 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 놓치는 스타일이다.


늘 포상이 있는 집고양이라 어찌나 다행인지. 무한 경쟁에는 도태되기 쉽다.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주인을 닮은 듯도 하다. 물론 집사는 호기심은 많은데 무모하고 신중함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스타일이지만, 놓치는 쪽 딱 그 부분만 비슷하다.


집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작은 일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딸애의 졸업식 때 뭔가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 꽃을 주문해 직접 꽃다발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위 사진이 뭔가 제리가 꽃향기를 맡는 멋진 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실 꽃을 엄청 뜯어먹어서 아주 혼쭐이 났다. 누나 꽃다발 만들 거라고 먹으면 안 돼!


고양이를 기르기 전 한 때 식집사였다.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 집은 화분으로 가득했었다. 그때는 뭔가 푸른색이 힐링을 줄 것만 같아서 자꾸 사다 모으게 되었다. 식물을 기르는 것이 잘 맞았는지 점점 풍성해졌었다.


슬프게도 고양이를 기르기 전 모든 화분을 떠나보내야 했다. 고양이는 식물을 뜯어먹는데 건강에 치명적인 종류가 있기에 고양이와 화분은 양립하기 어렵다. 유일하게 남은 화분이 군자란인데 이건 너무 커서 원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안방 베란다로 보내졌다.


올해 꽃대가 두 개나 올라와서 아주 예쁜 꽃을 피웠지만, 제리가 자라고 큰 화분에 가뿐히 올라앉기 시작하고는 얘도 곧 떠나보내야 할 듯하다. 




요전날 온라인 서점에서 잡지 부록을 묶어 두었던 색 고무줄을 제리가 가지고 놀기에 크기도 꽤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 늘 잘 회수해서 모아두는 장에 넣어두고 했는데 그날은 정신이 없었다. 애들이 하교하고 딸애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녀석을 말리지 않고 두었는데, (말렸어야 했는데)


"엄마. 빨간 고무줄 봤어요?"


"빨간 고무줄?"


딸애를 따라 화장실에 간 제리가 빨간 고무줄이 뭉쳐 있는데 서 있더니 이내 냥냥거리다 고무줄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딸애가 제리를 들어봤는데도 고무줄이 없는 걸로 보아 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빨간 고무줄이라면 낮에 봤던 부록을 묶어두었던 그게 그런 색이었던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완전히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사고회로가 일시 정지된 상태였다.

둘 다 화장실에서 내보내고 샤워기를 틀어 화장실 전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혹시 고무줄이 나오기를 하는 작은 기대를 하면서 문제는 못 찾았다는 거였다. 막막했다.


"먹는 거 직접 본 것도 아니잖아."


"먹을 수밖에 없어. 없잖아. 고무줄."


아들은 동생을 몰기 시작했다. 우선 검색을 해서 이물질 삼킴 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을 숙지했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는데 남편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먹을 리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우선 사료를 금식시키고, 가까운 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하니 24시간 동물병원에 같이 가기로 했다.


제리는 구토증상도 없고, 아픈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더 느긋하게 자기 때문에 난리가 난 우리와 보란 듯 종이 삼자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24시간 병원은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었다.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는지. 고무줄을 빨리 치웠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병원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일분일초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수의사 선생님은 흥분한 나의 상황 설명을 다 듣고는 경우의 수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따님이 직접 보신 것이 아니니 명확하게 먹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시고요.


애기가 아픈 증상이 현재 없고. 두 시간이면 위에 머물 시간인데 그 경우 구토제를 쓰거나 위 내시경으로 꺼내야 합니다.


근데 고양이는 구토제가 거의 효과가 없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럼 위 내시경인데, 위에 음식물이 있을 경우 100%로 찾는다는 보장은 못해요. 이 경우 수면마취 후 진행되거든요.


아무래도 수술에 준하는 경우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시술 전 검사 비용 포함해서 비용도 130 정도입니다. . 비싸요. 시간이 지나 장으로 넘어가게 되면 더 비싸요.


장은 절개수술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아시면 되고요. 지금 야간이라 야간 할증도 있고요. 현재 초음파는 불가능하고 엑스레이 정도는 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시고 알려주세요. "


답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위 엑스레이라도 촬영해 달라고 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위 엑스레이에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금속이 아니라면 원래 찾기 어렵다고 했다. 6만 원의 카드 영수증을 들고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수의사 선생님이 130이라 말했을 때 남편은 당황하며 비싸다고 말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혹시 너무 찜찜하시면 내일까지 금식시키시고 초음파를 볼 수도 있어요. 물론 그것도 안 나올 수 있어요. 또 집에서 고무줄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잘 한 번 찾아보시고요."


딸애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남편과 딸애의 말을 상당히 신뢰하는 나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사이 자동 사료기에 나와 있던 밥을 정신없이 먹는 제리로 인해 모든 일이 꼬였다. 


이제 변으로 나오길 기다리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이 미스터리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아직 먹었다고 여겨진 빨간 고무줄은 집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제리의 변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원래 가던 동물병원 선생님은 고무줄정도는 별문제 없다며 고무줄은 변으로 배출되고 고무줄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거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 굳이 불필요한 진료를 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찜찜한 입장이라 선생님이 변을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음에도 계속 검사하고 있는 나만 남았다.


제발 빨간색의 그것이 어딘가에서라도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